제 7 호 ‘솔직함’의 가면을 쓴 ‘무례함’
‘솔직함’의 가면을 쓴 ‘무례함’ 정지은 정기자 구독자 318만 명을 자랑하던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을 아는가. 이들의 구독자는 현재 292만 명으로 급감한 상태이다. 이들의 구독자 감소는 지난달 한 영상을 올리며 시작되었다. 해당 영상은 피식대학의 시리즈물 중 하나인 ‘메이드 인 경상도’의 영양 편이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피식대학 멤버들이 돌아다니며 경상도 지역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인데, 영양 편에서 멤버들의 영양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지역 비하로 논란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경북 영양에 대해 인구수가 1만 5천 명이라며,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장수 마을이라고 소개했고, 이에 한 멤버는 "이런 지역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냐?"며 "여기 중국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한 식당의 메뉴가 너무 특색이 없다고 말하며, 아무리 그들의 개그를 즐기던 사람들이더라도 눈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피식대학을 즐겨보던 사람들조차 이번 영상에는 유독 어딘가의 아슬아슬한 불편함을 느꼈다는 피드백을 남겼다. 피식대학의 방문에 영양 공무원들은 지역 홍보를 기대하던 상황임에도, “내가 공무원인데 여기 발령받으면... 여기까지만 할게.”라며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들이 잠깐이나마 영상에서 보인 이러한 태도에 사람들은 ‘무례하다.’는 평을 내렸고, 그 평가는 26만 명의 구독자 감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솔직하고 소탈한 개그를 하여 유쾌함을 주었던 그들의 개그이지만, 이번에는 ‘선’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을 두둔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자신들이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한 것이 왜 잘못이냐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평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에서 느껴진 멤버들의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당 영상으로 하여 주민들이 느낀 불편함과 멋쩍음이라는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분명 그들의 아이디어로 충분히 유머러스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 순간의 언행만큼은 솔직함이 아니었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었을 뿐이다. ‘솔직함’과 ‘무례함’ 그 경계는 과연 어디쯤 있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정말 너를 위해서야. 친구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길 바라.” “사람은 누구나 솔직해야 해. 솔직한 사람은 매력적이야.”라는 말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누군가 상처를 받을까 돌려서 이야기하다가 제대로 원하는 바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성격상, “에둘러 말하지 말고, 그냥 얘기해.”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당당함과 거침없음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어렵지만 이에 대해 실제로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랑받는 캐릭터들은 모두 ‘솔직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다. 돌려서 말하다가 괜한 오해를 사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헷갈림 없이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 일명 ‘사이다’를 느껴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이 상처받을까, 혹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속을 숨기는 태도는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내부 상황을 모르는 객관적인 시청자의 시선에서는 그저 답답하기도 하고 비겁한 태도로 느껴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이 솔직한 것일까?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기보다, 거짓됨 없이 온전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과연 솔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솔직하지 않음’과 ‘거짓말’은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솔직함이라는 가면으로 무례함을 숨겨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임에도,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 같은 간질거림을 핑계로 말하는 것이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기준을 감히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사전에만 따르더라도 ‘솔직(率直)함’은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저 꾸밈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에 ‘무례(無禮)함’은 단어 그대로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는 것. 고로 타인의 잘못을 들춰내고,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차이는 종이 한 장처럼 얇은 경계에 놓여있다고 느껴진다. 분명 두 단어 모두 언행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긍정적이고, 어떤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솔직함의 선을 넘어 뾰족함을 건넨다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이 선을 넘지 않고 마음을 잘 전달한다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솔직함은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면, 무례함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무방비한 언행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만 내세우게 된다면 우리는 관계를 얕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을 뿐. 다들 상대에게 무례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中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쉽게 생각을 남길 수 있게 만들었고, 공감을 누르는 터치 한 번으로 나의 호불호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대가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오랜 시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표현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례함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본인의 선호도와 의견은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내뱉기 전, 자신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야.”라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혹여 솔직하지 않은 건 모두 가식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는가. 필자도 스스로 돌아보았다. ‘솔직함’의 태도를 갖추기로 마음을 먹고, 때로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위해 이야기들을 내뱉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는 생각에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화 내부에 속해있는 누군가의 표정을 보면 내 말이 미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눈치가 있다면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 그 순간부터는 내가 한 말이 혹시나 그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진 않았을지, 저 표정 너머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고 신경 쓰게 된다. 이는 마음이 불편하고 더욱 언행에 주의해야겠다고 집에 돌아가 늘 반성하고 다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솔직함은 분명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다. 남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에 스스로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고, 상대로 하여 어색하던 벽이 허물어지고 더욱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점이 있는 ‘솔직함’임에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례함’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는 이---만큼의 먼 거리라고 느끼고 있는데, 선뜻 가까워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에 더욱 부담을 느끼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알고, 내 마음을 건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심적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면, 상대도 충분히 기분 나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돌아보고 대화를 할 때 적당한 선을 지키며, 자신의 마음을 꾸밈없이 솔직하고 예쁘게 말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헷갈리는 상황도, 누군가가 기분 나쁜 상황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 상대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늘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지니고 솔직해지기로 스스로 되뇌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다연, <피식대학, 논란 이후 결국 ‘영상 올스톱’>, 스포츠월드, 2024.06.25. https://www.sportsworldi.com/newsView/20240625513608 양아라, <'피식대학' 이용주·김민수·정재형이 경북 영양서 선 넘는 무례한 말 남발했는데 논란 이후 그들이 보여준 행동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24.05.17.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20205 홍현태,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딥앤와이드, 2022.04.28.
제 7 호 퍼스널 OO, 관심 있으세요?
퍼스널 OO, 관심 있으세요? 이선민 정기자 패션이나 뷰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퍼스널 OO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OO는 무엇일까? 빈칸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퍼스널 컬러, 퍼스널 골격, 퍼스널 헤어…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퍼스널 컬러다. 우리가 퍼스널-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가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유행에 흘러가기보다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게 꼭 맞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같은 화장품이라도 어울리는 사람이 다르고, 남에겐 별로인데 나한테는 잘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유행을 따라가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패션 아이템을 소비할 수 있다. 대신 길가에서 나와 똑같은 옷, 가방, 신발 등을 신은 사람들을 정말 눈에 띄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신발이라 구매해서 신고 나갔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똑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을 하루에 10명도 더 보고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퍼스널’은 남들과 똑같은 모습이 아닌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기 위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하나의 자기 개발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3년 한 업체의 뉴스 기사를 보면 “실제로 패션·뷰티 제품을 구매할 때 퍼스널 컬러를 고려한다는 소비자 비율을 보면 한국 54.4%, 미국 59.6%, 일본 54.9% 등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셀프 퍼스널 검사가 가능하고 관련 제품을 추천하는 어플, 잼페이스의 퍼스널 컬러 관련 검색량도 2021년 8월부터 2022년 8월까지 322% 증가했다.”라는 내용을 알 수 있다.[1] 그만큼 현재 퍼스널-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모두에게 익숙한 ‘퍼스널 컬러’를 예로 들어서 자연스럽게 퍼스널에 과몰입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묘사해 보고자 한다. 1. 퍼스널 컬러: “컬러는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채를 찾아내는 개인별 컬러 진단 시스템” 언제부터 한국에서 퍼스널 컬러가 사용되기 시작됐을까? 네이버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시, 가장 오래된 기사는 2005년 12월 05일에 작성된 [전문가가 말하는 ‘면접 때 내게 맞는 색채 고르기와 코디법’]이다. 위 사례는 면접 때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준으로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색채와 코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는 생각보다 한국에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중들이 유행처럼 인지하게 된 시기는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쯤 패션 뷰티 관련 블로거들, 유튜버들이 1인 미디어로 등장하면서 전문가 용어였던 ‘퍼스널컬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2] SNS와 같은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에게 맞는 색깔’에 대해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2. 나도 해봤어, 퍼스널 컬러 검사. 나도 퍼스널 컬러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검사를 받을 당시인 2023년에는 퍼스널 컬러에 대한 유행이 약간은 시들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듯이 인스타그램, 유튜브만 봐도 관련 콘텐츠가 다수 소비되고 있었다. 퍼스널 컬러 검사 당시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얼굴에 하얀색 천으로 머리색을 가리고, 일명 드래프트라는 천을 얼굴 밑에 대어 변화하는 얼굴의 안색을 비교하며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함께 간 친구가 담당 선생님과 함께 A 색은 잘 어울리고 B 색은 별로야 라고, 말해주는데, 솔직히 내 눈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전문가인 선생님이 진단해 주신 거니까 내 눈보다 훨씬 믿음직하고 신뢰성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겨울 쿨 딥톤’을 진단받았다. 겨울 쿨 톤 중에서도 어두운 계열, 예를 들자면 검은색과 남색이 잘 어울리는 무게감 있는 분위기에 톤이라고 해 주셨다. 검사 후에는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화장품을 선택하는데 수월함이 생겼다. 이미 일차적으로 범주가 좁혀졌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디자인 위주로 구매했다. 내가 색상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을 디자인과 소재를 비교하는데 시간을 좀 더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를 통해 나에 대해 한층 더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만족감은 올라갔다. 추가로 요즘 또 SNS에 보이는 ‘퍼스널 헤어’에 도전해 봐야 하나 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개인의 매력을 살리기 위한 퍼스널 컬러, 사실은 유행에 따라가는 건 아니냐고. 떠올려 보자. 퍼스널 컬러,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적이 있진 않았는지. SNS에 관련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어떤 쪽에 속할까 하고 셀프 검사도 해본 사람도 분명히 있다. 나도 그랬다. 물론 퍼스널 컬러처럼 ‘퍼스널’의 취지는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판단할 때는 놓치고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다면, 효율적인 시간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잠시만. 퍼스널 컬러가 전부일까? ‘퍼스널’에 대한 몰입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제약을 준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퍼스널 컬러 검사 당시 사실 선생님이 추천해 준 립스틱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간 친구와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들이 어울린다고 하니까 꼭 내가 이 색상이 어울려야 할 것 같고, 꼭 그 색이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후로 옷을 고를 때도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말이 생겼다. “겨울 쿨톤인 나에게 이 색상은 웜톤이라 안 어울려”라고 옷을 입어 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나에게 어울리는 개성을 찾기 위해 퍼스널 컬러 검사를 했음에도 오히려 나를 ‘그 퍼스널 컬러’에 가두고 남들과 같이 획일화를 시키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상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안전하게 가려는 선택을 고수하게 되었는지, 톤에 상관없이 다양한 색상을 도전하지 않고 이렇게 간단하게 나에게 어울리는, 개성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건지에 대해 고민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내가 퍼스널 컬러에 대한 마케팅 전략에 넘어간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갖게 되었다. 사실 블로그에 있는 퍼스널 컬러 후기를 봐도, 자신의 톤에 맞는 새로운 화장품을 다시 구매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나도 바로 드럭스토어인 ‘올리브영’에 가서 추천받은 화장품을 샀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쿨톤 추천’, ‘웜톤 추천’이라는 문구가 걸린 추천 화장품들도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립스틱의 어떤 색상을 구매할지 고민이 될 땐, 화장품 위에 붙여진 ‘추천’ 색상을 망설임 없이 고르기도 한다. 당연히 내가 그 ‘추천’ 색상에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4. 생각보다 너는 너를 몰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퍼스널- 자체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보다는 참고하여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퍼스널-‘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긍정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의외로 취업 박람회에서도 취업 상담 및 지원서 제출의 기회뿐만 아니라 노무상담, 면접 메이크업, 퍼스널컬러 진단, 지문적성검사 등 취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한다.[3] 퍼스널 컬러를 이용해 면접에서 내가 어필하고자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메이킹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수 있다. 이렇게 퍼스널 컬러를 이용하여 나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망설임 없이 퍼스널-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개성을 해치지 않고 퍼스널 컬러를 참고할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그 선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이 퍼스널-이 전부일까? 차라리 이번기회에 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 요인에 나를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나는 누구인지,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나를 알아보자. 그러면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게 되고 외부적인 요인은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참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유미란 칼럼리스트, [소곤소곤 컬러이야기] 컬러를 활용한 이미지 변신! 퍼스널컬러 유행의 시작은?, 경인종합일보, 2021.04.12, https://www.jonghap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670 2. 최영권 기자, NYT도 주목한 “美 퍼스널 컬러 진단 열풍”, 서울신문, 2024.04.18,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4/04/08/20240408500076?wlog_tag3=naver 3. 박지연 기자, “색(色)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공기 같아요”, 고대신문, 2023.05.22,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0988 [1] 김효혜/정슬기 기자, 퍼스널컬러 찾는 MZ … 화장품 초개인화 시대, 매일경제, 2023.06.26, https://www.mk.co.kr/news/business/10769569 [2] 정가람 기자, '퍼스널 컬러' 찾아주는 컨설턴트, 그녀의 '예쁜' 이야기, 2018.03.08, https://www.sedaily.com/NewsView/1RWWGDQHRT [3] 의왕시 취업박람회 성황리 개최..."500여명 면접 참여", 뉴스핌, 24.05.10,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0510000246
제 7 호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친기후 정책, 통합이 해답이다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친기후 정책, 통합이 해답이다 안희주 수습기자 기후동행카드, 교통비 절약의 길로 기대 109,550원. 지난 개강 첫 달 교통비였다. 아침마다 버스, 1호선, 다시 버스를 타며 통학을 한다. 난 후불 교통카드를 사용해 월급날,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자 마자 교통비가 빠져나간다. 매일매일 통학이나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교통비’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시행된 기후동행카드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기후동행카드란 1회 6만원대의 요금충전으로 한달간 대중교통과 따릉이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다. 사실 이 기후동행카드의 모티브는 독일의 49유로 티켓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의 연방정부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기후보호라는 중요한 목표를 위한 에너지 감소를 위한 정책으로 9유로 티켓을 도입하였다. 3개월 간의 시범운행 후 운송회사협회는 9유로 티켓을 통해 탄소배출량이 한 달에 60만t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재정상 운영을 가능케 하도록 49유로로 가격을 인상하여 한달동안 전국의 지하철, 버스와 같은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연간 13000대 가량의 승용차 이용이 감소, 연 32000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약 50만명의 시민이 1인당 연간 34만원 이상의 할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주중 승용차로 출·퇴근하거나 주말에 승용차를 이용하던 사람이 ‘대중교통’으로 수단을 전환하는 모든 경우를 포함한 수치다.) 그리고 서울시의 집계에 따르면 출시 한달만에 약 46만 장이 팔리고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교통비만이 대중교통의 문제일까 하지만 많은 관심을 얻었다고 기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사업소개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부터 ‘기후동행’인 이 정책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친기후 정책이다. 자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으로 갈아타야 기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통계에 따르면, 주로 자차를 이용하는 4-50대 중장년층의 비율은 원래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던 2-30대들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정책의 효과가 예상보다 미미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사진출처 : 매일경제 서울시의 모순적인 정책 시행 또한 문제이다. 최근 서울시는 승용차 친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남산터널 외곽방향 통행료 무료와 주요도심 월 정기권 주차권 요금 할인 같은 정책을 펼쳤다. 자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겠다는 기후동행카드 정책의 요지와 맞지 않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또한 “승용차 이용자에게 편의를 주는 정책은 기후동행카드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지적하였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후동행카드 외에도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중장년층의 경우, 이동의 편리성이나 시간 절약, 접근성 등으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기후와 ‘동행’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서울이라는 사용 범위이다. 기후동행카드의 서비스 범위는 ① 서울 지역 내 지하철 + 김포골드라인 ② 서울시 면허 시내, 마을버스(심야버스 포함) 3 따릉이 이다. 서울로 통학하고 출퇴근하는 인구 중 다수는 경기도민일 것이다. 나 또한 경기도에 살지만 서울로 통학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는 경기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버스 노선 또한 매번 확인해야하는 불편함이 존재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경기도 구간에서 사용률은 같은 구간 교통카드 사용률의 1.6%에 불과할 정도로 저조하다. 이는 당연히 친기후라는 정책의 요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나타난 정책이 K패스이다. K패스란 대중교통을 월 15회 이상 이용 시 교통비의 일정비율을 환급해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K패스의 지향점은 친기후가 아닌 듯 보인다. 당초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출시 전, 경기도와 주변 지자체들에게 업무협약을 요구했다. 경기도는 경기패스 정책만을 생각하며 이를 거절하였고 현재는 인천광역시, 김포시, 군포시, 과천시, 고양시, 하남시만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서울시와 경기도 간,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 허용 범위와 사용량에 대하여 경쟁, 기싸움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아닌 경쟁적인 관계가 아닌지, 과연 이 관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물론 경쟁관계로도 서로 보완해 나가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월정액 금액을 감소시키거나, 적립률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게 되면 지금보다 작은 동기로도 대중교통으로 이동 수단을 전환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경제’라는 요지를 강조한 경쟁으로, ‘기후’라는 요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두 정책의 차이점이 많아질수록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박재홍 고려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여러 프로그램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참여율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정책의 일관성 부족은 소비자의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소비자들의 번거로움 증가는 참여율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의 통합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친기후’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함으로써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려는 중요한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두 정책이 서로 상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기대했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강혜규 복지행정연구실 연구위원은 ‘사업 간의 유사성·중복성은 업무의 중복성, 분절성, 비효율성의 문제와 함께 사업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수요자의 서비스 이용 접근성과 체감도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 요청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말을 근거로, 이는 현재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가 통합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면서,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오히려 '친기후' 정책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친기후’ 정책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이 마일리지를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거나 다음 달 월정액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할인율을 개선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친기후' 정책의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을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8월,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가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두 정책 간의 경쟁으로 인한 사용자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없애고 ‘친기후’ 정책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두 정책의 통합 필요성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1. 김계연, '기후동행카드 모델' 독일 D티켓 가격 동결, 연합뉴스, 2024.01.24 https://www.yna.co.kr/view/AKR20240124003200082 2. 정다은, [신문 읽어주는 교수님] 서울시 무제한 교통 패스 '기후동행카드', 이름에 숨겨진 뜻은?, 한양뉴스포털, 2024.03.07 https://www.newshyu.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399 3. 손가윤, ‘동행’하는 ‘기후동행카드’가 되려면, 서울대뉴스, 2024. 03.03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20 4. 서울특별시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 소개, 2024.04.26 https://news.seoul.go.kr/traffic/archives/510651?listPage=1&s=%EA%B8%B0%ED%9B%84%EB%8F%99%ED%96%89%EC%B9%B4%EB%93%9C 5. 이지안, 불티나는 기후동행카드, 문제는 '기후', 매일경제, 2024.02.12 https://www.mk.co.kr/news/society/10940983 6. K패스 홈페이지 K패스 사업 소개 https://korea-pass.kr/info/intro.do 7. 김용완, 15일부터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도심 방향만 징수∙∙∙ 중구 주민 ‘반발’, 조선일보, 2024.01.15 https://www.chosun.com/special/special_section/2024/01/15/GAGQUKIIZBHGBEWYKWQHYERFNA/ 8. 권혜정, '기후동행카드' vs 'K-패스' 경쟁 본격화…나에게 맞는 카드는, 뉴스1, 2024.04.28 https://www.news1.kr/articles/?5398397 9. 임명수, 기후동행카드 수도권 확대 놓고 서울·경기 '기싸움'...전문가 "지하철부터 해야", 한국일보, 2024.03.0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416020000464 1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https://repository.kihasa.re.kr/bitstream/201002/14329/3/%EC%9D%B4%EC%8A%88%EC%95%A4%ED%8F%AC%EC%BB%A4%EC%8A%A4.2015.N0292.pdf
제 7 호 보통의 행복
보통의 행복 송지민 정기자 끼익… 쿵. 그냥 잠깐만 눈 감고 있으면 돼. 그냥 잠깐만 자는 척하면 돼. 그냥 잠깐만… 그럼 금방 끝나. 몇 개월 전, 나와 내 동생은 고모네로 들어왔다. 고모와 고모부는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 집에는 사촌 오빠가 한 명 있었고, 오빠의 역할은 철부지 아들인 듯했다. 우리에게는 작은 방 하나가 내어졌고, 그곳에는 어린이를 위한 어쩌고의 책들이 가득 찬 책장과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실바니안 인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언제나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이 식탁에 놓여 있었고, 주말이면 다양한 테마파크에 데려가서 놀아주는 그 집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아빠와는 자주 만났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듯하였고, 그 덕에 우리는 사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상관없이 모두 할 수 있었다. 아빠를 만날 때면 눈빛에서 미안함과 사랑함이 느껴져, 떨어져 사는 것쯤이야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집에서의 생활에 안심하며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쯤, 불행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와 내 동생은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고, 잠자리에 예민했던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고, 지금은 내가 뒤척여서 가만히 있지만 분명히 누가 들어왔다. 나는 고모가 우리가 잘 자고 있는지 잠깐 확인하러 들어온 줄 알고는, ‘고모, 왜?’라며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잠에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며칠 후,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단지 사촌오빠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고모와 고모부 몰래 나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을, 내가 말함과 동시에 이 집에서의 안정감이 깨질 거라는 것을.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주사도 잘 맞았고, 치과에서도 절대로 운 적이 없으니까. 나는 꽤 용감했고, 나와 내 동생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더 용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부분은,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나와 내 동생 둘 중 한 명이라도 잠에서 깨면 안 되니까 조심하는 듯했다. 이렇게 조금의 안심이라도 한 게 화근이었을까. 똑같이 문이 열리고 잠깐의 정적 뒤에 나기 시작하는 미세한 발자국 소리는 어딘가 이상했다.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혹시 어두운 탓에 나를 못 알아보나 싶어 이불을 걷어차 나와 동생의 키 차이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미동 없는 듯한 모습에 생각했다. 오늘은 내가 아니구나.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이 가빠진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일단 오빠를 멈춰 세우기 위해 잠에서 깨고 있는 척을 했다. 계속해서 뒤척이며 웅얼웅얼 해대자 조금 뒤에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지금까지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며 생각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고모한테 말했다. 나 이제 방 혼자 쓸래, 얘랑 같이 쓰기 싫어. 동생은 서운해 보이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어쩔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고모는 다정한 말과 함께 몇 번 나를 설득했지만 나의 완강한 태도에 사춘기가 일찍 왔나 싶어 끝내 수긍해주었다. 그렇게 동생은 나한테 크게 삐져 며칠간 심술을 냈지만 고모와 함께 잘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그걸로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비슷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런 조용한 불행에 익숙해져 갔다. 조금 더 커서 내가 겪은 것들이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즈음에는 내 안에 자기혐오라는 싹이 자라나고 있었고, 무수하게 긴 밤 동안 너무 많은 물을 주었는지 깊게 뿌리를 내렸다. 나는 내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부터 하루에 서너 번의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지, 까슬까슬한 타월로 살갗이 다 벗겨질 때까지 계속했지만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 통증이 필요했다.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모든 것에 대한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내가 말을 잘 안 들은 탓에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고, 그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이다. 밤이 늦도록 오지 않는 엄마한테 귀찮게 전화하지 말걸. 기다리지 말고 자고 있으라 할 때 그 말을 잘 들을걸. 아빠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아빠는 언제 오냐며 보채지 말걸. 둘이 싸우던 그날, 자는 척하지 않고 말리기라도 할 걸. 그냥 내가 미안하다고,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말할걸. 다 나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이 불행을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새로운 흉터가 생겼다 옅어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내게 위로를 건넸다.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수학학원의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뜬금없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힘든 일 있으면 말해, 선생님이 다 도와줄게.”라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 독서실로 가서 생각했다. 나는 분명 여느 날과 다름없이 웃음을 잃지 않았었다. 작은 농담에도 잘 웃어 보였는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혼란도 잠시, 공책 위로 뚝뚝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뭘 어떻게 해줄 건데, 이제 와서 뭘 어떻게’와 같이 꼬인 생각들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든 생각은 이런 나라도 위로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받아 본 위로였다. 그렇기에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물론 나는 선생님께 실제로 말하진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러고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토록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고 미운 만큼 실제로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내 잘못이 아니라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게 맞다고 확인받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되었다. 비록 상상일 뿐이었지만 그 덕에 나는 그날 밤 잠에 드는 것이 무섭지 않았고, 오랜만에 조금 행복했다. 불행과 행복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걸까. 그 뒤로 나는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빠는 재혼을 했고, 나에게는 다정한 엄마와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이 생겼다. 또, 가끔 주말 저녁에 만나 맥주 한잔하며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남자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들과 지내다 보면 가끔 내가 지금 너무 행복한가 싶은 생각이 들어 무서워질 때가 있다. 행복이 다 채워져 또다시 불행이 찾아올까 봐. 그래서 습관처럼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드는 시기가 있는데, 그간의 날들을 다시금 생각하며 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결코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만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게 내가 나의 행복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니까.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딱 보통만큼만 행복하고 싶다.
제 7 호 X
X 송지민 정기자 # D-276 늦은 저녁을 먹고 산책하면서, 너와 나는 서로의 집 앞 벚꽃이 더 예쁘다는 말장난 끝에 내년을 약속하고서는 우리가 되었지. 나도 산책을 꽤나 좋아하지만 너는 따라갈 수가 없더라. 어떻게 아무리 걸어도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을 수가 있지? 그래도 내가 지쳐 하는 것 같을 때면 금세 알아차리고 벤치를 찾는 네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잠깐만 쉬고 있으라며 뛰어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 오는 것도. 이후로도 꽤 많은 산책을 했는데,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나서 함께 걷는 그 시간이 좋았어. 걷는 동안 같은 시선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계속 달라지는 풍경에 얘기 나눌 소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모두 다. # D-219 내가 맨날 하던 거 있지, ‘만약에~’ 이거, 기억나?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제대로 대꾸도 안 해주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내 만약에 게임에 진지하게 고민해 주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려 하는 모습이 조금 감동이었어. 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고마웠어. 나중에야 알았거든. 내가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네가 머리를 쥐어짜 냈다는 걸. 그 시간이 나만 즐거웠던 게 아니면 좋겠다. 맞춰주려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너는 참 다정한 사람이야. # D-185 연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너를 믿는다고, 우리 둘 다 같은 말을 했었지. 바빠서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이성이 끼어 있는 술자리에 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봐. 같이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개인적인 시간을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네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아서 좋았어. 그런 점에서 우린 참 잘 맞았던 것 같아. 근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 D-131 나는 너의 가치관이 궁금해서, 네가 어떤 사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궁금해서, 그냥 그래서 사회적으로 예민할 수도 있는 점들을 너와 함께 얘기해 보고 싶었어. 처음에는 싸울 것 같다며 피하기만 하던 네가 어느새 나와 같이 토론해 주는 것같이 느껴져서 그게 되게 고마웠어. 근데 나는 너를 설득하려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너는 아니었나 봐. 너는 우리가 같아지길 바랐나 봐. 하나의 핀트에 꽂히면 내가 네 의견에 동의할 때까지 이어 나가던 몇 시간의 통화가 나는 점점 지쳐갔어. 우리 누가 옳고 그른 지 따지려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었잖아. 그런데 항상 마지막엔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게 많이 아쉬웠어. 너는 끝까지 나를 설득하려 했고, 나는 끝까지 그런 너에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 참 미련하다, 그치. # D-74 “여기 와봤어? 이거 먹어봤어?” 처음이건 아니건 뭐가 중요하길래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지 몰랐어. “첫눈 오는 날,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야 해!” 우린 각자의 일정으로 만나지 못했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기분이 상한 걸 온몸으로 티 내는 네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어. 나의 첫사랑이 네가 맞는지 물어볼 때, 네 말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사랑에 숫자를 매기며 처음에 집착하는 너의 그런 부분이 우습고 싫어서 끝까지 네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현재에 진심을 다해 충실하면 됐지 굳이 과거를 끌어와 더 나은 현재를 만들려는 네가 이해되지 않았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네가 ‘처음’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 단어에 설렘과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담겨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걸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 싸우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어. # D-0 나는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냥 내가 원하는 연애를 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네가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 나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는 원래의 네 모습이 보일 때마다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싸우기 싫어서 그냥 덮어두고는 넘어갔지. 너도 그걸 바라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우리 서로 진작부터 솔직했다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봤는데… 아니, 우리는 똑같았을 거야. 그냥 너랑 그만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할래.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화가 안 나. 이해되지 않는 것도 없어. 네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 다 그럴 수 있지. 응, 나는 이제 그냥 0이 된 거야. # D+45 너와 헤어지고 나서 별생각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정리하는 걸 까먹고 있었어. 그래서 생각난 김에 한 번에 다 하려 했는데, 내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던 터라 정리할 것도 없더라. 미안해, 그렇게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했는데 그거 한 번을 못 해줘서. 네가 앞으로 만날 사람은 꽤 다정하고, 세심하고, 귀엽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사랑스러운 말과 함께 영원을 약속하고, 말하지 않아도 너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며 공감해 주고,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네가 내게 바랐지만 나는 될 수 없었던. # D+1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너와 헤어지고 혼자 지내는 게 너무 편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어느새 그런 사람이 생겼어. “보고 싶어, 지금 갈게.”가 아니라 “보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아?”라며 나에게 여유를 주는, 내가 원하는 배려를 해주는 사람을 만났어. 이 사람은 정말로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무던해 보이는 성격도, 자기 감정에 대해 솔직한 것도, 터무니없는 상상과 농담을 즐겨하는 것도. 같이 있을 때 서로 아무 말이 없어도 너무 편안하고 좋아. 그래서 너와 했던 연애를 경험 삼아 이 사람이랑 더 나은 연애를 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 프로필 사진이랑 상태 메시지 지우고, 좋은 사람 찾을 수 있길 바랄게. 정말로 잘 지내, 안녕.
제 7 호 대한축구협회, 이제 팬들이 '레드카드'를 들어야 할 때
대한축구협회, 이제 팬들이 '레드카드'를 들어야 할 때 남영욱 수습기자 [1] 침착맨의 사과방송 모습, 사진출처: 중앙일보 “그냥 홍명보 감독이 싫은 거 아니야?“ 최근 큰 비판을 받은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유튜버 ‘침착맨’의 발언이다. 이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고, 이에 침착맨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한 후 사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는 방송을 진행하였다. 그는 “잘 모르는 입장에서 실언을 했다. 사과드린다.”라고 전했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축구를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은 침착맨과 같은 생각을, 그러니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하여 자꾸만 옆에서 화를 낸다면 피로감이 느껴지고, 해당 주제를 회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회피해도 괜찮은 문제가 아니다. 가볍게라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를 즐기고 있다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점점 강해지고 제2의 박지성 손흥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길 바란다면 이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분노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 처럼 전반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분노하고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축구협회의 논란이 되는 행보 중 상당 부분을 덜어내고 핵심만을 간추려 축구를 가볍게 즐기는 팬들이 이 사태를 알기 편하도록 요약해 보고자 한다. 먼저 현재 축구 팬들이 그토록 축구협회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출발하여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의 문제점까지의 흐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월드컵이 끝난 후 귀국한 선수단의 모습. 저조한 성적으로 비판 받은 2014년에는 카메라에 나오지 않는 구석에 서있고, 우수한 성적으로 여론이 좋았던 2022년 월드컵에서는 감독 벤투와 주장 손흥민 사이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선 모습이다. 또한 입국 게이트를 통과할 때도 2014년엔 제일 뒤에서, 2018년에는 제일 먼저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출처:kbs 사실 현재의 축구협회와 그 협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몽규 회장이 비판받는 지점은 한두 개가 아니다. 작게는 아시안 컵 실패에 대한 선수 탓, 기부금 부풀리기 등등의 행보부터 크게는 승부 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까지. 사실 글로 다 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가장 큰 이슈인 감독 선임 관련 이슈만을 다루겠다. 2018년 7월, 제73대 감독 선임위원회 결성 제37대 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선임 위원회가 열린 직후에 김판곤 위원장은 감독 선임 절차 시작에 앞서 명확하게 기준을 내세웠다. 1. 월드컵 예선 통과 또는 대륙 컵/세계적 리그 우승을 지도한 감독 2. 새로운 한국 축구의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 2번의 ‘한국 축구의 철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크게 1. 능동적인 축구 2. 볼 소유 3. 전진성 있는 축구 4. 패스 축구 라는 4가지 기준을 밝혔다. ‘능동적인 축구’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득점 상황을 창조하는 전진 패스 (중략)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매우 적극적인 전방 압박' 등등의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대중들이 그 기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감독 선발 절차 시작 전 기준을 투명하게 밝힌 후에 기준에 부합하는 감독들 내에서 후보를 좁혀서 벤투 감독을 선임했고, 벤투라는 감독을 모든 사람이 선호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절차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투명한 절차에 의해 선발된 벤투 감독은 다들 아는 것처럼 결국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결과만이 아니라 경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상대로 앞선 기준을 모두 충족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손흥민, 김민재의 부상과 같은 여러 악재가 있었음에도 경기력과 결과 양면에서 성과를 거둬 "앞으로 4년간 인내하고 잘 지원하면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감독이라고 확신했다"라는 김판곤 위원장의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2023년 1월, 제74대 감독 선임위원회 결성 "기준에 앞서 인간적인 부분을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매력적인 부분이 많았다. 특히 강한 성격이 좋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과 인연이 많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선수들을 동기부여할 수 있는 리더다" "축구는 전술만 있는 게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이 전술에 강점을 보인다" 클린스만의 선임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발표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이유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스포츠조선의 박찬준 기자는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줄 색깔에 대한 질문에 본인의 축구 철학을 늘어놓는 등 선임 과정을 짐작하기 어려운 기자회견이었다.”라는 평을 남겼다. 선임 이전부터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워크', '환경'을 선임 기준으로 내세워두고 그 기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던 터라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과정과 이유에 대해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기자회견에서조차 애매한 말로 얼버무리며 클린스만호는 출발했다. 2024년 2월, 클린스만 감독 경질 결국 불안 속에 출범한 클린스만호는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에서 유효슈팅 0개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마침표를 찍게 된다. 아시안컵 내내 충격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클린스만호는 선임 기준으로 내세웠던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워크', '환경’ 그 어떤 조건도 명확하게 충족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특히 ‘팀워크’ 면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이 모두 큰 충격을 받았던 ‘탁구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거지며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를 두고 “본인은 훌륭했는데 선수들이 싸워서 진 것이다.”라는 변명을 댔고 정몽규 회장은 본인의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서 이를 두둔하며 “나는 클린스만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는 평을 남겼다. 다섯 가지의 기준이 선임 과정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렇게 불투명한 절차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정몽규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여러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벤투 감독 선임 때와 같은 과정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감독 자리가 비냐고 농담을 했는데 실제로 정몽규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라는 비화를 공개했다. 결국 클린스만 독단 선임 문제로 종로경찰서가 조사를 하게 될 정도로 선임 절차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 2024년 2월, 임시 감독 체제 클린스만호의 실패로 인해 협회는 긴 시간을 숙고하여 제대로 된 감독을 새로 뽑기 위하여 임시 감독 체제로 돌입하게 되고, 황선홍 감독을 그 첫 번째 감독 대행으로 선정하게 된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은 이미 올림픽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있었고, 파리 올림픽 예선을 불과 한 달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에 많은 축구 팬이 스케줄 상의 우려를 표했으나 대한민국은 40년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해 왔기에 과한 우려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2024 파리 올림픽, 충격적인 40년만의 예선 탈락 올림픽 예선 8강에서 인도네시아에 패배하여 탈락하며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피파 랭킹은 23위, 인도네시아는 134위다. 전력상 한참 약세인 상대에게 졸전 끝에 패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이미 감독직을 맡고 있던 황선홍 감독을 임시감독으로 선임한 협회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황선홍 감독은 감독 대행을 마무리 지었다. 한편 아직도 협회의 감독 선임 절차는 지지부진하였기에 한 번의 임시감독 체제를 더 거치게 된다. 그러나 제시 마치, 바그너 등의 이미 검증된 명장들이 한국 축구의 장단점, 발전 방향, 훈련시설, 나아가 한국의 유망주 선수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분석을 하는 등 감독직에 적극성을 보였다는 호재가 전해지며 팬들은 참고 기다리기로 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 7월 7일, 드디어 협회가 내정한 감독을 발표하게 된다. 홍명보 감독 선임 발표 [3]이임생 기술 위원장,사진 출처: kbs “홍명보 감독님이 보여주신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빌드업시 라볼피아나 형태와 비대칭 백스리 형태를 가져간다. 이러한 빌드업을 통해 프로그레션에 의해 상대 측면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어태킹 서드에서 라인 브레이킹과 상대에 맞춘 카운터 어택과 크로스를 통한 공격, 측면에서 콤비네이션 플레이 등 다양한 좋은 모습이 있었다” 7월 7일 오후 2시경,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를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이임생 기술 위원장은 선임 근거를 밝히는 브리핑을 진행하였는데, 위 발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벤투 감독 선임 당시의 김판곤 위원장처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지나치게 현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앞서 한국 감독직에 열의를 보였던 바그너와 포옛은 자신들이 감독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통보받기는커녕 한마디 언질도 없이 홍명보 감독 선임 기자회견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불쾌감을 드러냈고, 한국은 앞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데 있어 지울 수 없는 외교 참사의 기억으로 이번 사태를 기억하게 되었다. 심지어 홍명보 감독은 이미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있었고 이에 떠나지 않는다며 구단과 팬들을 안심시키고 공개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을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번복하고 감독직을 수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임생 위원장은 면접에 열의를 보이며 pt를 진행한 다른 감독들을 두고 지원조차 하지 않은 홍명보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부탁을 한 끝에 동의를 받아내었다. 이에 면접 절차를 생략했다는 비판을 받자 “홍명보 감독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감독이니 면접 같은 절차가 필요 없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내놓았다. 결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75대 감독은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었다. 협회가 이렇게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계속해서 독단적으로 감독을 선임하려고 하는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본인 측근을 선수단에 심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묘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의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에게 무려 30억의 연봉까지 지급하기로 계약한 상황이라(해외 유명 감독이 제안한 액수와 같은 액수) 더더욱 그 의중은 오리무중이다. 현재 이러한 초유의 사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 파문’을 놓고 대한축구협회를 감사하기로 한 상태이므로 조사 결과에 따라 결론이 날 것이다. 축구팬들이 분노하는 이유 [4]지난 태국전에서 정몽규 회장을 비판하는 깃발을 든 시민의 모습, 축구협회 측의 무력 제지로 손에 부상을 입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축구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한갓 홍명보 감독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독단적인 감독 선임으로 이미 뼈저린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는 협회가 또다시 절차를 무시한 기준 없는 독단적인 선임을 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큰 것이다. [5]축구협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축구협회 고위 임원이 보낸 조롱 메일, 사진 출처: 조선일보 여기에 더해 축구 팬들의 항의와 비판의 목소리에 협회는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다양한 방식으로 무시하고 탄압하며 심지어는 조롱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독단은 축구 팬들을 무시하고 대한민국 축구를 병들게 하는 행위이다. 이미 정말 많은 타격을 받은 대한민국 축구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정말 가볍게 축구를 즐기는 축구 팬일지라도 공감하고 분노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만이 우리가 사랑하고 즐기는 대한민국 축구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고문헌] 채혜선, "홍명보가 그냥 싫은 거잖아"…침착맨 발언에 축구팬 발칵, 중앙일보, 2024.07.1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662 박찬준, '누구와, 어떻게, 왜' 속터지는 클린스만 선임 최악의 기자회견, 궁금증만 증폭시겼다, 스포츠조선, 2023.03.01 https://www.chosun.com/sports/football/2023/03/01/DVIHNFTTMDK3ECKE46XF5TSSOY/ 정지훈, KFA, 새 사령탑에 파울루 벤투 선임...2022년 월드컵까지+신태용과 작별, 인터풋볼, 2018.08.17 https://m.sports.naver.com/kfootball/article/413/0000070585 장민석, 정몽규 "클린스만 잔여 연봉 문제가 생기면 재정적 기여 고민", 조선일보, 2024.02.16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2/16/3FUBP7N5FJHVROXDOQAGCMZ5R4/ 스포츠머그, 수사까지 착수한 선임 과정…말이 갈린 정몽규 회장과 클린스만, '두 절친'의 기억, SBS, 2024.02.20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32467 김진주, 클린스만 "농담했는데 정몽규 회장에게 전화 와"... 감독 부임 비화 공개, 한국일보, 2024.02.19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1914280002046?did=NA 이준희, 홍 감독 ‘면접 생략’ 인정한 이임생 이사 “면접 대신 부탁…내정은 있을 수 없어”, KBS, 2024.07.10 https://m.sports.naver.com/kfootball/article/056/0011758666 박수주, '정몽규 아웃' 깃발로 몸싸움…"아르바이트생 돌발행동", 연합뉴스, 2024.03.22 https://www.yna.co.kr/view/MYH20240322019200641 김명일, 축구협회 고위 인사, 비판기사 쓴 기자에 ‘조롱 메일’ 보냈다, 조선일보, 2027.07.25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7/25/XG4SYZLETRCFXHLM3R64CGJ7IY/ [1] 사진 출처: 채혜선, "홍명보가 그냥 싫은 거잖아"…침착맨 발언에 축구팬 발칵, 중앙일보, 2024.07.16 [2] 사진출처: 최상철, ‘엿 세례’와 ‘달걀 투척’ 잊어라...'16강' 벤투호는 ‘박수 세례’, kbs, 2022.12.07 [3] 사진 출처: 이준희, 홍 감독 ‘면접 생략’ 인정한 이임생 이사 “면접 대신 부탁…내정은 있을 수 없어”, KBS, 2024.07.10 [4] 사진 출처: 박수주, '정몽규 아웃' 깃발로 몸싸움…"아르바이트생 돌발행동", 연합뉴스, 2024.03.22 [5] 사진 출처: 김명일, 축구협회 고위 인사, 비판기사 쓴 기자에 ‘조롱 메일’ 보냈다, 조선일보, 2027.07.25
제 6 호 밥? 빵? 면?
정기자 김나현 202210152@sangmyung.kr 현대인들의 가장 큰 행복, 하루 중 제일 신중한 순간. 그것은 아마 ‘점심메뉴 정하기’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식사는 단순 에너지 섭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소중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나 역시, 이에 무조건 동의한다. 매일 3교시 수업이 시작할 때 즈음부터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시작되고, 이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한다. 상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아 그래서 오늘 뭐 먹지?!”가 되어 버리지만, 매일 같은 결론으로 귀결되는 상상이더라도 지루한 하루를 살아가는 내게 아주 소중하고 신중한 순간이란 이야기이다. 그만큼 그날의 메뉴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전반적인 기분 상태와 연결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 하나!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소중한 한 끼’의 메뉴를 선택하는가? 가장 가까운 식당?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아니면, 전에 맛있게 먹었던 메뉴? 혹시 음식의 ‘종류’가 되진 않았는지. “밥, 빵, 면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뭐야?”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음식 취향에 대한 소소한 논쟁을 즐기는 편이다. 이를테면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찍어 먹느냐, 부어 먹느냐에 관한 이야기나, 시리얼을 먹을 때 시리얼의 바삭함과 촉촉함 중에 어떤 식감을 더 선호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다못해 콜라 브랜드 선호도를 따져보면서 주식과 곁들여 먹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경우의 수가 무수히 많은 음식 취향 중에서도, ‘밥과 빵과 면 중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화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밥·빵·면은 일상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탄수화물이기도 하고, 각각 특색 있는 맛과 형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에게 밥과 빵과 면은, 먼저 밥. 윤기나는 쌀밥은 역시 무슨 반찬이든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밥 없이 살 수는 없다’는 말 하나로 밥의 매력을 보여준다. 밥 한 공기와 갖가지 맛스러운 반찬이 함께라면,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든든함과 따듯함을 느낄 수 있지. 볶음밥이나 리조또처럼 다양한 조리법도 있고 말이다. 잡곡을 넣어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맛과 건강을 모두 갖춘 것이다. 여기에 빵도 질 수는 없다. 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빵이 밥이 될 수 있나?’ 싶겠지만… 가장 기본인 샌드위치부터 베이글에 다양한 크림치즈를 발라 먹을 수도, 치아바타에 수프를 곁들여 꽉 찬 한 끼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식사 메뉴로 담백한 빵을, 후식 메뉴로 달콤한 빵을 먹으며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고 말이다. 바삭하거나, 촉촉하거나, 말랑하거나! 다양한 식감과 형태로 간편하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빵만의 매력은 어디에 내놔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진 면은 특히 마니아 층이 많은듯하다. 면의 익힘 정도에 따라 꼬들꼬들한 면, 퍼진 면, 적절히 익은 면을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나, 볶음 혹은 국물 등 종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은, 면이 가진 매력을 확 끌어올린다. 밥보다는 좀 가벼운 음식을 먹고 싶지만 빵은 너무 가볍게 느껴질 때, 취향대로 고른 면으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것이야! 밥 vs 빵 vs 면. 그것이 문제로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밥 vs 빵 vs 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A는 세 개의 선택지를 듣고 망설임 없이 밥을 골랐다. 식사 메뉴로 밥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빵과 면은 채울 수 없는 밥만의 든든함이 좋다는 거였다. 밥으로 한 끼 식사를 꾸리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차고 잘 꺼지지 않아서 식사 후 만족감이 오래 유지된다고 했다. 밥을 선택한 또 다른 친구 B는 씹을수록 풍부한 맛이 느껴지는 쌀의 매력과, 어떤 반찬과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평소 빵을 워낙 좋아하는 친구, C는 식감에 따른 빵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폭신폭신하거나, 쫄깃하거나. 종류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식감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빠르게 먹을 수 있어 간편하면서도 밥에 뒤지지 않는 든든함을 준다는 것도 그녀가 빵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빵을 사랑하는 필자는, 그녀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고민 끝에 면을 선택한 D는 요즘같이 추운 날, 뜨끈한 국물과 함께 면을 후루룩 마시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면을 골랐다. 면은 매번 빠른 속도로 먹게 되지만, 급하게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함께였다. 이상의 가벼운 물음으로 나의 느낌만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밥, 빵, 면에 대한 감상을 들어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밥과 빵과 면 중에서 가장 최고의 탄수화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인터뷰를 통해서도 ‘역시 정답은 없다’는 말이 더욱 확실해졌을 뿐, 여전히 끝나지 않을 매일매일의 흥미로운 논제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나의 기분과 상태, 음식에 대한 개인의 선호와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식사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졌는지에 따라서도 선택의 경우의 수는 많아지고, 그만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식사시간 직전, 오늘의 탄수화물을 고르는 찰나의 순간이 더 기대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추천 메뉴는요 - ! 밥은, 어른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날의 식사 메뉴로 추천해요. 고요한 저녁식사나 특별한 날의 식사에 어울리며, 다양한 반찬과 함께 즐기면 풍부한 맛을 느낄 수도 있죠! 특히 밥만이 가진 풍부한 영양소를 생각하면,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밥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빵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간편한 아침식사로 즐기는 게 제격이지요. 바삭한 빵 한 조각은 바쁜 아침에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며, 여기에 버터나 잼을 함께 곁들이면 쉽고 맛있는 아침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베이컨이나 치즈를 매일 다르게 추가하며 조합하면, 간편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잖아요. 바쁜 일상에서 급한 식사를 할 때는, 면을 선택해 보세요! 대체로 신속하고 쉬운 요리가 가능해 식당의 회전율이 높기도 하고, 무겁지 않아 소화가 빨리 되며, 에너지도 빠르게 공급한다는 점에서 적절하니까요. 혹시라도 오늘의 ‘밥 vs 빵 vs 면’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오늘은 든든하고 맛있는 솥밥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코로나19 이후, 즐거운 건강관리를 추구하며 현재까지도 주목받는 ‘헬시플레저’ 열풍에 맞춰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은 솥밥을 추천해 봅니다. 그 위에 올라갈 토핑은 취향대로 선택해 보세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좋고 보양을 위한 장어도 좋지요. 구운 연어나 전복, 버섯도요. “오늘 식사는 밥과 빵, 면 중 어떤 것으로 즐겨볼까, 무슨 음식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이, 매일매일의 행복한 고민으로 단조로운 일상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1. 서울경제, 안경진 기자, “주말에 솥밥 먹어볼까” 한의사는 이렇게 먹는다[헬시타임], https://www.sedaily.com/NewsView/2D48WQWEQF
제 6 호 실시간 검색어가 뭐길래?
정기자 김나현 202210152@sangmyung.kr ‘실시간 검색어’, 폐지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포털사이트 1, 2위를 다투던 네이버(NAVER)와 다음(Daum)의 메인 화면에는 실시간의 이슈나 속보를 포털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실시간 검색어’ 기능이 있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이 기능을 통해 연예인의 음원 발매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타 지역의 재난 상황을 알아보기도 했었다.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는 그 시간에 가장 뜨거운 이슈를 어떤 기능보다도 빠르게 보여주는 서비스였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 검색어 기능을 애용했다는 기록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와 다음은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의 순차적인 폐지를 결정했다. 2020년 2월 카카오의 발표를 시작으로, 2021년 2월에는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기능까지 말이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폐지 이후, 크고 작은 유사 서비스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실시간 검색어 기능을 애용하던 사람들도 초반에는 유사한 서비스를 찾다가 점점 자연스레 ‘실시간 검색어 없는 세상’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네이버의 새로운 서비스 ‘트렌드 토픽’이 시범 출시된 것. ‘트렌드 토픽’의 출시와 폐지 ‘트렌드 토픽’이란, 네이버 전체 사용자들이 좋아한 주제와 문서를 바탕으로 트렌드 토픽을 추천해 주는 네이버의 새로운 서비스로서, 시범적으로 출시됐다. 네이버는 트렌드 토픽을 공개하며 “알고리즘을 통한 맞춤형 콘텐츠 추천 관련 다양한 서비스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라고 밝혔으나, 일부에서는 트렌드 토픽 기능을 두고 지적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네이버의 서비스가 논란의 중심이 된 이유, ‘2021년 폐지된 실시간 검색어의 기능과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서비스 공개 이후 지난해 8월, ‘트렌드 토픽’을 정식으로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해당 서비스가 과거 존재했던 ‘실시간 검색어’의 대체재 혹은 부활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에 휩싸였다. 이에 네이버 측은 트렌드 토픽 서비스의 종료와 함께 유사한 서비스 계획도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해당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실시간 검색어’가 폐지되던 시기의 상황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폐지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기해보았다. 2021년[ik5] ,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했던 실시간 검색어가 왜 사라지게 됐을까?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폐지, ‘어째서’? 네이버는 급상승 검색어 폐지 이유를 ‘정보의 다양성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혁명의 영향으로 어디든지 정보가 파다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도 실시간 검색어 기능에 기대어 제공하는 정보만 받아보고 있다는 것이 세계 트렌드 변화와 맞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네이버의 표면적인 입장은 그러했으나, 실시간 검색어가 부추겼던 사회적 피해들을 부정할 수 있을까? 대중의 능동적인 정보 접근을 유도하게 된 이유에는 추가적인 사유가 있다고 추측된다.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는 사람들의 검색 빈도 순으로 오르게 된다. 포털 메인 화면에 뜰 만큼 검색어의 순위가 오르면 자연스레 해당 키워드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실시간 검색어는 자연재해, 범죄 등의 위급한 사안을 대중에게 알리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지만, 화두에 오르는 대상이 ‘사람’이 된다면? 이목 집중의 대상이 특정 인물로 바뀌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인물은 불필요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게 된다.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가 한창 중요했던 그때에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정치인 혹은 유명인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중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게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대중은 한두 마디씩 거들었으니, 실시간 검색어 기능은 거대한 사이버 불링의 통로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2019년 10월,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유명 연예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기어코 당시 사회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시간 검색어는 여론조작에 취약하다는 위험도 가지고 있었다. 포털 이용자들의 검색량 증가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원리를 정치적·상업적 집단에서 악용하며 발생한 선동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지지자의 ‘조국 힘내세요’와 반대측의 ‘조국 사퇴하세요’가 함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사건처럼, 여론 조작은 특히 정치권에서 크게 불거졌고 실시간 검색어의 신뢰도가 중요해지는 동시에 위태로워졌다. 네이버는 국내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대형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타 플랫폼 보다 훨씬 실시간 검색어의 파급력 컸기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고 본다. 이런 문제들이 있음에도 실시간 검색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었다는 것 역시 문제였다. 실시간 검색어의 역기능 정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고 규제 방안을 선 긋듯이 나눌 수도 없는 부분이라서,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구체적인 규제방법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창 실시간 검색어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쟁이 확대됐던 2019년에는, 포털 기업들의 투명한 자율규제를 유도하는 것이 현 상황에 가장 유효한 대응방식이 될 것이라는 심우민 입법학센터장(경인교대 교수)의 설명이 있기도 했다. 실시간 검색어는 공적 성격을 부여하기 힘든 개개인의 의사표현 영역에 더 가까우므로 입법규제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없어진 이유와 효과가 실재와 부합했는가? 상기 이유들로 나타난 사회적 파장의 결과, 실시간 검색어는 폐지 수순으로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는 실시간 검색어가 불러오는 문제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렇게 없어진 것이다. 첨부1 [1] (실시간 검색어 폐지 이후 일어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 먹통'현상이 일어났을 당시의 반응)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가 폐지되고 한달이 지났을 때는, “사회 이슈 모르겠다”는 대중의 반응이 대다수를 차지했었다. 전처럼 가장 이슈가 되는 정보를 습득하기도 어렵고, 사회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ik14] 키워드도 알기 힘들어졌으며, 각종 사건을 알리는 기능의 서비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시간 검색어가 폐지된 현재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선택해 보는 구독 형식으로, 또는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개인의 편향성을 키울 수 있다는 위험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실시간 검색어 폐지가 불러온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앞서 살폈던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의 악용, 연예인을 이용한 이슈몰이 등의 문제가 줄어들며 인터넷 사용자들의 피로도가 줄었다는 평가가 있었고, 대중은 실시간 검색어의 변화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실시간 검색어의 폐지가 온전한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실시간 검색어를 받아들이는 최고의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차선책인 폐지를 결정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묘사한 실시간 검색어는 – 드라마가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나의 견해 주제를 정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시간 검색어와, 관련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혹여나 이 글이 특정 관점에 편향되어 보일까 싶어 이곳저곳의 자료들을 참고하던 중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줄거리가 이번 기사의 주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클립 몇 개를 찾아보곤 했다. 드라마에서는 포털 사이트의 의도적인 실시간 검색어 조작, 장악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연예인, 무분별한 찌라시 유포, 조작을 위한 정경유착 등 대형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폐지될 수밖에 없었던 크고 작은 이유들을 다뤘다. 드라마 클립 영상을 몇 개 보면서 배워가는 게 꽤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거의 사생활이 밝혀져 원치 않는 실시간 검색어 장악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연예인을 다룬 부분이었다. 실시간 검색어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해당 상황을 바라보니 그다지 옳은 말 같진 않았다.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던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 검색어’의 전파력으로 전 국민에게 퍼졌을 때, ‘대중의 알 권리’와 ‘당사자의 잊힐 권리[ik15] ’ 중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모호한 우선순위를 따지다가 그만 두고는, 개인 사생활에 대한 ‘알 권리’와 ‘잊힐 권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대한 호기심도 가져봤다. 실제로 그 균형이 정말 지켜질 수 있는 지도 궁금했지만, 아무튼 그 사이 실시간 검색어의 존재가 비난의 화살을 조준하는 역할이 되었음은 확신한다. 이야기가 조금 멀리 간 거 같아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보자면, 실시간 검색어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아주 쉽고 빠른 서비스라는 점에서 다수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실시간 검색어의 순기능이 주는 장점 그 이상으로 사회에 주는 파장과 위해가 크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어떤 것이 다수에게 이익을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며, 이 같은 이유로 실시간 검색어 존재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학기를 마치고 숨 돌릴 틈이 생기면 해당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부분부분 클립이 아닌 드라마 전체를 보고 다시 ‘실시간 검색어 폐지’를 돌아본다면 생각하는 게 달라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참고자료] 1. 파이낸셜뉴스, 윤홍집 기자, 실시간 검색어 폐지 한달…"없으니까 불편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s://www.fnnews.com/news/202103301259579126 2. 아주경제, 정명섭 기자, “네이버·다음 포털 실시간 검색어, 입법규제보다 자율규제가 현실적”, https://www.ajunews.com/view/20191025150521354
제 6 호 오래된 기억
정기자 송지민 202110353@sangmyung.kr 안녕하세요, 지민이에요.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재미없고 덧없으며 저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마치 심연에라도 갇힌 듯,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계속해서 들어가는 느낌이요. 그럴 땐 다시 헤엄쳐 올라가고 싶지도, 어떠한 노력도 하기가 싫어요. 싫다기보다는 귀찮달까. 누가 나를 끌어 올려 주기를 원하지도 않아요. 그냥 계속해서 가라앉다 보면 끝이 있겠지, 바닥이 닿아 멈추겠지 생각하면서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멍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어요. 그럼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를 싫어하게 되고, 무력감에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죠. 그런데 나는 계속 살아가잖아요. 대체 무엇이 나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끌어올리는지 생각해 봤어요. 최근은 아니고 작년 칠월이 지나갈 즈음 그랬던 때가 있었어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무기력과 함께 지낼 때요. 그때는 내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요. 어느 날 이른 저녁에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이 어렸을 적 찍었던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었어요. 우리 딸들 예쁘네.ㅎㅎ 하고요. 처음에는 뜬금없는 엄마의 문자에 잠깐 웃음이 났어요. 엄마가 보내준 사진은 예쁘기는커녕 개구져 보이기만 한 어린 여자애 둘이었거든요. 엄마는 왜 이런 사진을 예쁘다고 한 건지 웃기기도 하고 마침 할 것도 없어서 동생이랑 같이 옛날 사진들을 찾아봤어요. 아니, 언니만 범퍼카 운전 시켜주고 나는 안 시켜줘서 울고 있잖아. 억울해!!! 근데 너 유모차 안전바는 왜 물어뜯고 있냐? ㅋㅋㅋ. 와, 우리 팔 새까맣게 탄 거 봐. 무슨 아프리카라도 다녀왔나? 언니, 나 왜 넘어졌는데 안 일으켜주고 사진 찍는다고 예쁜 척해? 동생이 넘어졌으면 먼저 일으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사진을 봤어요.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어요. 커피와 디저트를 앞에 두고 언제나처럼 서로의 근황으로 시작하여 그땐 그랬지 하는 이야기들로 이어지는 그런 대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얼굴도장을 찍던 학교 앞 즉석 떡볶이집부터 시작했어요. 야, 기억나지. 거기는 볶음밥이 진짜 짱이었는데. 여름에는 무조건 볶음밥에 후식으로 커피빙수임. 아, 또 먹고 싶다. 우리 졸업 뮤지컬 기억나냐? 다인아 다시 춰 봐. 왜 이러니~ 왜 이러니~ 내 맘 다다다 알잖니~ㅋㅋㅋ. 야... 그만해라... 근데 우리는 어떻게 한 번을 같은 반 안 해주시냐. 선택과목도 다 맞추고 했는데. 아 그거 기억난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 앞에서 정모 했던 거ㅋㅋㅋ. 내일도 치즈 그거 아직도 파나... 공구할 사람? 별거 아닌 것 같던 기억들이 별거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추억들이 대수로웠더라고요.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잠시 흐려졌을 뿐이지, 다시 꺼내보면 맑은 기억들로 저는 매번 괜찮아지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보았던 글인데, 어떤 이는 직장에 다니면서 일상이 지치고 힘들 때 몇 년 전 유럽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대요. 언젠간 다시 가리라 다짐하면서요. 어쩌면 모든 이들이 그런 소중한 기억들 몇 개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오래된 기억들이 잊히지 않도록 자주 꺼내어주겠어요. 그리고 그런 기억을 만들기 위해 지금을 행복하게 남기어 오래 간직해야겠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저와 같다면 나만의 헤엄을 찾길 바라며, 더 좋은 글로 찾아올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제 6 호 Dear. J
미상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은 것들을 경험했어요.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해보고 그러다 실패하게 되면 자책과 후회도 해보고 다시금 일어나 더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해보고 어때요,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하시려나요? 우리가 아닌 동안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적당한 거리를 지킨 채 살갑게 지켜봐주는 사람들 내가 무얼 하든 어떤 사람이든 응원해주는 사람들 사랑을 그 자체로 주고 받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들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시려나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걱정할 만하게 살고 있지도 않아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 괜찮아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딘가 누군가에게 얽매인 채 있다는 게 갑자기 사라져버린 자유를 갈망하는 게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게 결국엔 떠나는 것을 택하고 돌아서는 게 매일 밤 전화했지만 받지 않던 그때가 밉진 않아요. 사랑받으려 애써 노력하는 날 보던 그대 눈빛도 그래요. 혹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괜찮아요. 다만, 가끔 옛날 생각들이 떠올라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서글픈 마음과 아직도 그때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하면 응, 그때 빼고는 저는 다 괜찮아요. 정말로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아마도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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