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호 먼지 속에서 나의 교지
편집장 이소명 202210058@sangmyung.kr 신문방송국 국장 교수님과 면담을 나누던 중, 특색 없는 교지이기에 문학잡지로 바꾸는 건 어떠냐는 제의를 하셨다. 당장은 어려우니 한두 개씩 문학을 써 보자고. 반발심이 들었다. 갑자기 문학이라니, 거기다 교지가 특색이 없다니. 집에 가면서 그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문학을 쓴다고 없던 독자가 늘어나겠는가? 그래도 안 해보는 것보단 해보는 게 낫겠지……. 그래서 수필이라는 거창한 듯한 명칭을 빌려 나의 경험과 생각을 끄적여 보려 한다. 따라서 이 글은 명확한 주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상명대의 자하교지의 이야기이며, 그 교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필자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 또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저 대학가에서 사라져 가는 무수한 ‘교지’와 그 교지 일원들의 이야기를 훑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교지의 필요성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지는 한 대학의 역사이고, 청춘들의 이야기니 무조건 존재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글은 아니다. 교지가 아니더라도, 학보가 아니더라도 SNS로 대학 내 이야기를 빠르게 접할 수 있어 더 이상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도 좋다. 그 생각에 나 또한 부정할 수만은 없기에,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교지의 일원이 불안한 마음에 남기는 작은 끄적임이다. 2023년 4월 중순부터 먼지와 함께 교지부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교지부실 이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교지부실과 함께 한 기간은 단지 1년에 불과했는데, 아주 오래된 나만의 장소를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지가 사라져 가는 과정 속에 있는 듯한 오묘한 순간이었다. 2022년 4월 나는 교지편집부의 수습기자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진로도 그쪽으로 결정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글과는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인사대 학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교지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한 이유가 있다면 신입생이 된 채 뭐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돈도 좀 되고, 생산성도 있으며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 걸 말이다. 편집장이 된 지금 시점에서 교지 생활이 위 세 요건에 충족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주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아주 아니다’ 중 그렇다와 보통이다의 어느 중간 지점일 것이라 대답할 수 있겠다. 정기자가 된 후로는 원고료 이외의 리더십 장학금도 받게 되어 신문방송국 일원이라는 것에 책임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독자들이 우리의 글을 읽고 공감이든 분노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감정을 느꼈다면, 생산성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자를 꿈꾸는 지금 교지를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것이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더불어 교지는 즐겁고도 소중했다. 교지를 되돌아보면 그 시기의 우리를 한눈에 되돌아볼 수 있다. 코로나 시기로 우리가 어떤 학교생활을 했고, 어떠한 위기를 겪었으며, 어떠한 고통을 느꼈는지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지, 전장연의 시위로 아침마다 에브리타임에 불만을 토로하던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막 시작하던 ‘천 원의 아침밥’ 행사의 미숙한 점이 뭐였는지,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낭만을 되찾기 시작한 우리 대학가의 모습은 어떤지 글로 현상을 그려낼 수 있다. 유년 시절 작성한 일기장을 성인이 된 후 열어보듯, 교지는 우리의 낡은 일기장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2022년 9월 나는 교지편집부의 정기자가 되었다. 야심 차게 기획한 두 개의 기사 바로 ‘일본-대만 역사’와 ‘그 당시 뜨거운 감자 검수완박’이었다. 일본과 대만 역사에 대한 기사는 논문과 기사 그리고 역사 방송을 찾아보며 자료 조사에 힘을 썼을 뿐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국가의 관계를 기사 작성 직전에 알게 되었기에 내가 너무 무지했던가 고민도 했었지만, ‘저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요’라던가 ‘대충 들어보긴 했는데 자세히 알게 되니 더 충격적이네요’라는 감상평들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몰래 미소를 띠기도 했다. 골칫덩어리는 ‘검수완박’ 기사였다. 자료 조사가 어려울 건 예측했지만, 결론짓기가 더 어려울 건 예측하지 못했다. 중립성을 가지되 검수완박에 대한 내 생각을 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개 대학생인 내가 정치인과 법률가의 의견에 반대를 던지는 글을 유연하게 쓰기란 쉽지 않다. 교지인들의 수많은 피드백을 거쳐 그렇게 글을 마무리 지었다. 부끄럽지만서도 가장 공을 들인 애증을 느끼는 글이었다. 하지만 발간 직전 중립성이 부족하며, 정치에 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최종 발간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그 글은 나의 노트북 파일에만 남아있는 글이 되었다. 다양성과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언론은 결국 독자를 지켜낼 수 없다. 소수인 대학 언론에서 글의 다양성과 중립성을 지키는 건 더욱 어렵기에 더욱 중요하다. 정치 기사에서 독립성이란 외줄 타기와 같은 것이다. 2023년 3월 나는 교지편집부의 편집장이 되었다. 편집장이 된 후 맨 처음 한 일은 수습기자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겨우 1년 차가 편집장이라니. 내가 원해서 시작했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겨우 1년 된 애가 수습기자 면접을 보다니 그 꼴이 스스로 우스웠다. 짧은 자기소개와 면접 그리고 짧은 기사를 받았다.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문체를 가져, 어떤 분위기의 글을 완성해 낼지가 말이다. 나는 딱딱한 문체에 정보 전달이 주된 내용이고, 정치나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다. 다른 부원은 소소한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지나쳐서는 안 되는, 그런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한다. 이처럼 교지가 균형성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습기자 모집을 마무리 지었다. 그 후, 약 한 달간은 기사 작성을 하지 못했다. 교지부실의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교지부실은 학생회관 322호로 3층 가장 끝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넓진 않지만, 조용하면서도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기에 교지와 잘 어울리는 장소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범관에 있던 우체국을 학생회관으로 옮기고, 학생회관 내 신문방송국의 부실들을 이렇게 저렇게 옮기다 보니, 318호를 교지편집부와 영자신문사가 함께 쓰게 되었다. 이전 부실보다는 조금 넓어졌지만, 더 이상 교지부실에서 따스한 햇볕을 즐길 수는 없었다. 318호 옆인 317호에는 우체국이 있는데 그 사이 벽은 가벽이라 조용한 교지부실도 사라졌다. 교지와 영자가 동시에 회의를 진행할 수 없으니, 회의 일정을 조정해야 했고 부실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면 담백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삿짐을 쌀 때, 아주 오래전 교지의 사진을 보았다. 민주화운동을 취재 나갔을 적, 노동운동을 취재 나갔을 적의 사진은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무대에 올라가 축제를 즐기거나, 단란한 학교생활과 교지생활을 즐기는 사진은 우리의 부모님 또는 그의 부모님의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교지는 뜨겁지 못하다. 미지근한 정도의 온도에 머무르고 있다. 독자들의 관심도 미지근하다. 어떻게 해야 교지가 다시 뜨거워질지, 아니면 미지근한 정도가 시대의 변화라 받아들이며 수긍해야 할지 오래된 먼지 속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이 고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이 고민이 조금은 더 나은 방향성을 내려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2023년 7월은 무더운 하계 방학의 시작이었다. 방학 동안 꼭 마치겠다고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2022년 기사’ 종이책 제작이다. 원래 교지는 종이책을 발간하는 언론기관이었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종이책을 찾는 학우가 적어지자, 웹진의 형태로 전환되어 더 이상 종이의 교지는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웹진은 종이책보다 접근성이 좋아 교지를 쉽게 공유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종이 소비를 막을 수도 있는 장점들이 있다. 그런 ‘쉽고 간편함’이라는 웹진의 장점이 나에게 아쉬운 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교지의 험난했던 제작 과정이 너무나도 쉬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글의 소비가 너무 가볍게 발생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고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애써 포장하며 종이책 제작을 시작하였다. 우선, 2021년의 기사를 모아 종이책을 만들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처음에는 전자책 편집기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글의 배치, 폰트, 크기를 조율하였다. 방학 동안 도서관에서 근로하며 시키시는 일이 없을 때는 허구한 날 노트북만 들여다보았다. 기사들의 배치를 마치고는 여는 글을 작성하고, 표지를 제작하여 20권 정도를 주문하였다. 더 이상 학교의 지원이 아닌, 사비로 제작한 것이라 정기자들과 조금씩 돈을 모아 제작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해서 종이책을 굳이 만들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그에 대한 결론은 ‘할 수 있는 한, 만들고 싶다’였다. 자하는 1969년 창간호부터 매년 교지를 보관하고 있다. 간간히 보관되지 못 한 년도도 있지만, 거의 매년 교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사 당시 교지의 짐이 가장 많았다. 이런 역사를 끊고 싶지 않았다. 표지가 찢기거나 색이 변색이 되고, 먼지가 쌓이기도 했지만 상명여자사범대학 시절부터 학우들의 노력이 깃든 책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교지는 그대로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남는 기록은 장점대로 쉽고 간편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결국, 종이책은 오랫동안 간직하여 우리의 낡은 일기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이다. 독자들도 자신만의 낡은 일기장이 있는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노력과 추억과 소중함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낡은 일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낡은 일기장은 교지이고, 나의 교지는 이렇다. p.s. 수많은 대학 교지가 오랫동안 존속되기를 바라며
제 6 호 우리의 참여로 굴러가는 언론, 언론에 참여하시겠습니까?
편집장 이소명 202210058@sangmyung.kr 언론자유의 의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 고3 시절, 수능 사회탐구영역으로 정치와 법을 선택하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 특강에 서술된 개념부터, 문제 선지까지 달달 외웠다. 그때 내 머릿속에 저장된 언론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요소’이었다. 편할 날 없던 언론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 일본에 의해 언론 탄압을 받았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7년 광무신문지법이 공포됐다. 동 법은 사전검열, 기사내용 제한, 정부의 발행금지권 등을 법령에 담았다. 황실의 존엄모독・국헌문란・안녕질서 방해・풍속괴란(風俗壞亂)에 관한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되고, 이러한 내용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경시청 즉 일제가 판단했다. 동 법은 조선에서 발행되는 신문뿐 아니라 해외에서 들여오는 신문에도 적용됐다. 광무신문지법이 시행되고 1919년까지 조선인에게 신문 발행이 허가된 사례는 없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에도 언론은 편할 날이 없었다. 기사 하나하나가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였다. 중앙정보부는 광고사들에 압박을 넣어 동아일보는 광고란을 백지상태로 발행하기도 하였다. 시민들은 자유 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돈을 모아 광고비를 보탰고, 4개월 동안 1만 건의 격려 광고가 동아일보란의 광고란을 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 경영진은 투쟁에 앞선 기자들을 해고 처리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강제로 해직된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일명 동아투위를 결성하였다. 동아투위 기자들은 1977년부터 1년간 보도되지 않거나 왜곡 보도한 내용을 담아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사건일지>를 발행하였다. 이 일로 동아투위 기자 10명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언론의 자유를 빼앗는 주체는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그의 대표적 사례로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가 존재한다. 유명 주간지 소속 기자는 2006년 당시 삼성 부사장의 커지는 위력에 대해 취재했다. 해당 기사는 시사저널 870호에 개재될 예정이었으나, 시사저널 사장이 해당 기사를 870호에서 제외시켰다. 당시 삼성의 부사장과 시사저널의 사장은 친분이 있어 기자에게 해당 기사를 뺄 것을 지시했지만, 편집장을 비롯해 시사저널 기자들은 사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이에 사장은 직접 인쇄소로 나가 해당 기사를 삼성 광고로 대체하였다. 시대가 변함에도 언론 탄압은 지속되어 왔고 그 주체는 다양했다. 탄압 주체는 변했지만, 탄압으로 피해를받는 자가 독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한 숨구멍이 막히고 있다 언론의 자유 보호를 크게 인정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1964)이 있다. 해당 사건의 전말은 경찰 국장인 설리번이 유명 언론사인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허위 사실로 광고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를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에 미국연방대법원은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어야 한다며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방대법원판결 중 한 대목은 이렇다. “무엇이든 적절한 사용과 어느 정도의 오용을 정확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언론이야말로 이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분야다. 민주사회에서는 공공의 사안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하며, 그러다 보면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숨구멍조차 막게 된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해당 판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해당 판례는 공인(public figures)의 명예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관련하여 획기적인 선례로 남아, 아직도 전 세계 언론인은 해당 사건을 회자하고 있다. 설리번 사건과 유사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2020년에 발생한 채널A 사건과 2023년에 발생한 MBC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두 사건 외에도 유사한 사건은 매년 크고 작게 발생했다. 특히 공익 목적으로 하는 기자들의 취재권과 공직자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권 사이에는 대립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 권리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보다 중요한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사안이다. 그래서 보도의 허위 여부, 비방할 목적의 우무, 그리고 공익성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의 고소, 고발, 구속, 형사 처벌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이는 언론뿐만 아니라 공직자 또한 제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공직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자질의 검증하는 것은 언론사의 역할이다. 국민을 위해 자신의 맡은 업무를 부끄럼 없이 수행하는 것이 공직자의 역할이다. 언론과 공직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이가 순환하는 구조이다. 한쪽이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순간, 이 순환 구조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언론과 관련하여 관심 가져볼 만한 사안은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있다. 방통위는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을 해임했다. MBC 사장 선임 과정이 부실했고, 부실 경영을 방치하며, 감사 업무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법원은 해임 사유가 소명되지 않는다며 해임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방송문화진흥회 김기선 이사도 그 후 같은 이유로 해임되었지만, 또 같은 이유로 해임 처분이 정지되었다. 이렇게 언론은 숨구멍이 막히고 있다. 끊임없는 압박의 결과는 언론의 침묵일지 모른다. 권력에 반박 없는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는 언론 탄압의 아픔을 겪은 우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여당 의원 중 한 명은 허위 보도에 대해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라 하였다. 사형 집행이 멈춘 지 20년이 넘은 나라에서 ‘사형’은 쉬이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이다. 과연 허위 보도가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에 해당할까? “우려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훼손” – 뉴요커 지난 9월 30일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사가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실렸다. 제목은 ‘우려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훼손’. 2022년 이후의 언론 탄압 사례를 언급하며, 이는 “1980년대 군사 독재를 연상시킨다”고 하였다. 2022년 미국 국무부 국가별인권보고서[1]는 “정부와 공인들은 명예훼손을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이용하여 공론을 제한하고 있으며, 개인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협하거나 검열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유엔은 직접적으로 한국의 언론탄압에 관해 권고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11월 3일 유엔자유권위회[2]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정기 심사 결과>에서 정부 고위직이나 선출된 공직자들이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을 형사고소하고, 그로 인해 언론인들이 기소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우려하며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하지 말 것을 다시 권고했다. 더불어 형사 처벌이 언론인과 정치적 반대편을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책정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도 대한민국 순위는 하락세를 걷고 있다.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온다. 선조들의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일구어 내, 세계적으로 본보기로 여겨지던 대한민국이 사라져 가고 있다. 2023학년도 수능 특강에는 ‘언론자유의 의의 -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 부분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언론이 사유화되거나 스스로 권력화하거나 정치권력과 결탁할 경우 민주주의 실현의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함’[3]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언론으로 과장 뉴스가 증가하고, 자기검열에 걸려 편향 보도를 일삼는 기자들이 늘어나는 현황을 보면 당연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자유의 의의>가 수능특강에서 삭제된 것이 언론의 자유를 잃은 언론계의 실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국민으로서, 독자로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본 글은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 어디인지에 따라 위치만 바뀐 채 같은 내용의 논쟁이 계속되는, 그러한 반복의 역사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권력과 언론 그리고 국민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도래할 것이다. 권력은 언론을 사유화할 것이 아니라 당당해야 하고, 언론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닌 비판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파도처럼 흘러가는 물줄기를 단칼에 끊어낼 수는 없더라도, 커다란 바위를 쌓아가며 물줄기를 서서히 막아내야 할 때인 것 같다. 필자가 이 기사를 쓰게 된 연유는 어느 한 현직 기자 분에게 있다. 2023년 1월 겨울에 한 언론 강좌를 수강하였다. 존경해 왔던 기자가 강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여러 특종을 날리고, 대통령 비서와 설전까지 벌였던 유명한 기자 분이었다. 단 하나의 특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쳐 집요하게 쫓았는지, 그 노고가 느껴지는 경험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분의 직업은 처음부터 기자는 아니었다. 언론과 관련 없는 회사에서 나름 승승장구하며 살아가다, 회사 앞에서 물대포가 동원되는 시위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때 세상만사에 관심 없이 보내던 자기 자신을 목격하고 그렇게 기자가 되셨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바로 옆에서 물대포가 발사되는 데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는 자가 혹시 나 자신이지는 않을까? 매일 정치 뉴스를 올리시던 그 기자 분의 뉴스가 어느 날부터 끊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설된 SNS를 통해 정치부를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분은 짧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뜨겁게 의심하고 반발하는 삶을 거쳤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또는 개인적 견해와 무관하게 우리도 언론의 독자로서, 국가의 국민으로서 생각하고 의심하고 때로는 수용하는 그런 삶을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로서 국민으로서 가진 권리를 태만했을 때 우리도 모르게 그에 대한 제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경각해야 한다. 최근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제목을 빌어 독자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그리고 교지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본 기사는 상명대학교와 무관하며 기사의 내용은 기자 개인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1] 주한미국대사관 및 영사관,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 https://kr.usembassy.gov/ko/032023-2022-country-reports-on-human-rights-practices-ko/ [2] 국가인권위원회, 유엔자유권위원회 제5차 최종견해 이행방안에 관한 토론회, https://www.humanrights.go.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17&boardNo=7609696&menuLevel=3&menuNo=115 [3] EBS 2023학년도 수능특강 정치와 법 81p [참고문헌] 1. 강준만, [시론] 증오와 혐오를 파는 ‘유튜브 정치’, 시사저널 1791호, 2024.02.03.,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312 2. 이상원, 헌재가 ‘판단 어렵다’던 가짜뉴스, 방심위는 안다?, 시사 IN, 2023.10.1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310 3. 이승선, 방송법 개정안의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주체와 ‘편성위원회’ 규정의 위헌성 검토, 한국방속학회, 한국방송학보, 한국방송학보 제32권 제2호, 2018.03. 4. 최지향, 정치가 언론을 혐오할 때, 시사IN, 2023.10.07.,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241 5. 티브이 칼럼니스트, 언론 보도에 “국가반역, 사형”…독재가 온다, 한겨레, 2023.09.24.,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109797.html 6. 한영학, 광무신문지법과 일본 신문지법의 비교,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학보, 韓國言論學報 제55권 1호, 2011.02. 7. 허지혜, 4월 7일 ‘신문의 날’ 맞아 시사저널 기자 만나다, 경북대신문, 2007.04.12., https://www.knu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6595 8. 역덕이슈오늘 I 34 동아투위와 자유언론실천선언, KBS역사저널 그날, 2019.01.25., https://www.youtube.com/watch?v=XKIRKUIbaPg 9. 윤석열 정부 1년 : 권력 장악, 포퓰리즘 도구로 전락한 언론 - 뉴스타파, 뉴스타파, 2023.5.11., https://www.youtube.com/watch?v=RfGvVWM_aBE&t=462s 10. [뉴스외전 포커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 입장은? (2022.12.06/뉴스외전/MBC), MBCNEWS, 2022.12.06, https://www.youtube.com/watch?v=lQsOivL7Lo4 11. OPEN ARCHIVES, 1970년대 언론탄압, 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147
제 6 호 아직도 ‘산리오 키링’ 뽑는 걸 좋아하는 대학생이 있다?
정기자 이선민 202115029@sangmyung.kr 이 기사를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특정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을 산 경험이나 미디어 시청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 같다. 나는 당연히 YES이다. 21세기에 이러한 사회적 풍조를 ‘키덜트’라고 한다. 키덜트 라는 단어, 어딘지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키덜트 라는 단어는 ‘KID + ADULT’로 20, 30대의 어른이 됐는데도 여전히 어렸을 적의 분위기와 감성을 간직한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1] 네이버에서 ‘키덜트’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2001년 12월 25일에 작성된 『‘어른의 동심’을 잡는다, ‘키덜트 마케팅’ 봇물』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해당 단어가 처음 세상에 빛을 봤을 땐, 긍정적이긴 보단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일명 피터팬 신드롬이라고도 불리면서 어른이 된 현실을 피해 아이였던 과거에 머물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2] 한국에서도 역시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이면 어른답게”라며 나이에 맞는 행동거지와 언행을 강요받는 사회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회적 풍조가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2023년 현재 키덜트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책임감 없이 회피하고 싶어 하는 ‘피터팬 증후군’과는 달리, 사회생활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로 해소하는 능동적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기업에서까지 이들의 기호와 소비성향을 반영한 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상황을 토대로, 이전과는 사회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때의 아이들이 지금은 번듯한 한 명의 직장인이 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 이 글을 읽는 당신, 키덜트 인가요? ’ 키덜트가 생겨난 배경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해 봤을 때 하나의 키워드로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추억은 매우 신기하다. 오랫동안 잊힌 일이라도 매개체를 보는 순간, 그 순간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 그렇게 어른들은 그 순간의 기억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잊힌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그때의 자기 모습을 추억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인형을 아직도 침대 머리맡에 두곤 한다. 모두가 아는 포켓몬스터에 피카츄 인형을. 부모님은 한 번씩 방에 들어오셔서 인형과 관련된 나의 옛 추억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며 어린 나의 모습과 현재의 간극을 메우려고 하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시면서, 웃음을 짓고는 하신다. 최근에도 ‘바닐라코’라는 화장품 브랜드와 ‘바비’가 콜라보를 통해 화장품을 출시했다. 매장에서 해당 화장품을 봤을 때, “우와 이거 예전에 나도 있던 인형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에 여자아이들에게 바비는 동경의 존재이자, 마트에 가면 부모님께 바비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게 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추억의 존재인 바비가 화장품, 패션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일명 ‘바비 코어’라고 한다. 바비 코어로 바비하면 생각나는 분홍색을 필두로 이후 구매 전환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소한, 다양한 요소들로 우리는 추억을 되돌아본다.[3] 또한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경제적 여력이 생긴 성인들은 당시에 구매하지 못했던 고가의 제품이나 한정판과 같은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멋진 어른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대견함을 느끼고, 과시 심리 역시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어릴 때는 문방구 앞에 파는 500원짜리 뽑기가 일주일 치 용돈의 절반을 차지해서 어쩔 수 없이 사지 못하고 떠난 적도 있다. 하지만 대학생인 나는 꾸준히 알바를 하고 있기에 현재의 나는 달라졌다. 요즘엔 산리오라는 캐릭터의 키링을 모으기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무인 문방구 가게에 가서 2~3개씩 한 번에 구매한다. 물론 랜덤이기 때문에 항상 원하는 제품을 뽑을 수는 없지만, 어떠한 모양이 나올지 기대하면 뽑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이러한 모습에서 일명 어른들의 flex, ‘무해한 소비’가 떠오른다. 어릴 때 사 먹기엔 비쌌던 특정 아이스크림을 그릇에 한가득 담아 먹을 수 있다. 이 모습은 키덜트가 아니더라도, 그 행동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키덜트는 단순히 장난감을 사는 것만 포함되지 않고 어른의 모습으로 어릴 적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추가로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행동이 앞서 존재했음에도 왜 21세기인 지금, 키덜트라는 단어가 급부상하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전 세대의 이해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전엔 성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것에 대해 유치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부랑 관련 없는 물건을 구매해서 괜히 공부에 방해만 된다’라는 말, 한 번씩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 나이에 해야 하는 일인 공부, 대학, 취업이라는 과정 속에 적합한 무언가를 구매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억이라는 상자에 넣어두고 열어보지 않고, 현실에 순응하기 시작했을 것 같다. 이랬던 성인들이 하나둘 부모가 되었고,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자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개인들은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밝히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루어졌기에 이러한 모습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하나쯤 본인의 안식처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키덜트인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담긴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샵에 가서 구경하고, 또 소소한 구매를 통해 자신의 집에 모아둔 물건들을 보며 편안함을 느낀다. 나도 내 서랍 속 키링을 보며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장소로 생각해 보면 나만의 안식처는 할머니 댁인 것 같다.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무작정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는데,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진 장소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만족감 및 성취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어도 장난감과 같은 컬러링 북(coloring book), 레고, 프라모델 조립과 같은 활동들에 몰두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매하거나 활동을 하는 것은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요소라고 본다. 물론 가끔은 당장 필요하지 않고 쓸모없는데 굳이 사야 할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 경우에 부모님은 항상 물건을 구매하는데 있어서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렇기에 단순히 나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구매한 것에 대해 과연 꼭 필요했던 물건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고 하신다. 하지만 구매할 때마다 ‘쓸모’를 찾아가는 것은 오히려 키덜트로서 우리가 구매하려는 목적을 저해시킨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쓸모’를 다한 것이다. 단순한 놀이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이자 대화의 창구로 구체화된 키덜트 현상, 지금도 단순히 유치하고 생산성 없는 대상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제 키털트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소비시장에 영향을 주는 꽤 큰 규모로 성장했다. 키덜트는 그 시대의 모습을 추억으로 연결하여 보여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대학생인데 아직 침대에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인형을 두고 자는 내가 이상해 보일까? 이 인형을 통해 우리 가족은 한층 대화가 길어지고, 추억에 웃음 짓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은 변하고 있다. 자유롭게 내 추억을 꺼내서 언제나 편하게 위안받는, 그런 세상으로. [1]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9275&cid=40942&categoryId=31630 [2]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77381&cid=58345&categoryId=58345 [3] 양지호 기자, [기획] 패션·뷰티업계, 바비코어 열풍…“핑크의 매력”, , 현대경제신문, 23.07.26 https://www.fi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627 [참고 문헌] 1. 양지호 기자, [기획] 패션·뷰티업계, 바비코어 열풍…“핑크의 매력”, , 현대경제신문, 23.07.26 https://www.fi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627 2.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19275&cid=40942&categoryId=31630 3.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77381&cid=58345&categoryId=58345 4. 박소예 기자, 귀여운 거 아이만 좋아하는 거 아니었네...아기자기 서울 키덜트 명소, 23.11.29, https://www.mk.co.kr/news/culture/10886275 5. 이별님 기자, "어른스러움은 누가 정하나"...키덜트, 3040 사로잡다, 뉴스포스트, 23.11.22, https://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2730 6. 이상훈 기자, 인형 꾸미기에 빠진 키덜트 "이 순간 만큼은 행복합니다", UPI 뉴스, 23.05.04,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305040005 7. 이유진 기자,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들…유통업계 '키덜트' 열풍, 국제신문, 23.02.14,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200&key=20230214.99099003977 8. [광고]'어른의 동심' 잡는다…'키덜트 마케팅' 봇물, 동아일보, 01.12.2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0105344?sid=101
제 6 호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우리, ‘나’를 위해서
정기자 이선민 202115029@sangmyung.kr 두둥두둥, 내가 탄 지하철이 한강을 지나간다. 1호선 열차 안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억지로 몸을 끼워 잠시 숨을 고른다. 멍하니 창문 너머의 노을을 바라보자니 마음속 감성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여유를 가지고 밖을 쳐다본 게 얼마 만일까. 대중교통을 타면 자연스럽게 손에 들린 작은 또 다른 세상으로 나는 잠수한다. 편도 2시간가량 이어지는 통학 시간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건 따지자면 많기도 하지만, 한정적이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언제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인 것 같다. 언젠가 눈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창밖을 바라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늘의 변화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밖을 보고 있다니, 내가 매우 여유로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들이 그 작은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유튜브로 영상을 보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 마저 끝내지 못한 업무를 하는 사람, 사색에 잠긴 사람 등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곤 한다. 문뜩 내가 진정한 여유를 느껴본 적이 언제일지 생각이 들었다. 1) ‘여유(餘裕),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우리에게 왜 여유가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여유는 앞으로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추진제 역할이 아닐까 한다. 예전 나에게 여유란, 금전적-직업적으로 준비가 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괜스레 남들과 비교하고 조급하게 행동했던 것 같다. 여유는 사치라고 여겼다. 이처럼 바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내면, 마음을 걱정하고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당장 오늘 내일의 일만도 신경 쓰기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여유를 추구하기엔 힘에 부친다. 사실 안다. 바쁜 현대인이 여유를 가지는 건 얼마나 힘들고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 어른들은 그럴수록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일을 하라고 하신다. ‘얼른 앞에 놓인 일을 끝내고 쉬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쉬이 공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내 생활을 돌아보니,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여유 없이 조급하게 달려온 이 삶에서 나는 항상 피곤하고 짜증이 가득했다. 여유가 부족했을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끝이 좋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구직할 때 왠지 모르게 빨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 할 것 같고, 여러 군데 다 찔러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분명히 내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마음이 급해져서 섣부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있지 않은가, 꼭 아르바이트를 구인하고 나면 내가 원하는 조건에 더 부합하는 일명 ‘찰떡’같은 자리가 생길 때가. 그러면 아쉬움을 머금으면서 ‘내가 왜 좀 더 시간을 두지 않고 마음 급하게 구했을까?’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내 마음에 100% 부합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우리도 여유가 필요하다. 우연히 “20~30대 직장선택 기준”이라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2023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20·30대 827명을 대상으로 기업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6.6%가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을 선호한다는 내용이었다.[1] 예전에는 직장선택의 기준이 임금이었다면, 요즘은 워라벨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왜 여유가 부족하게 된 걸까? 이렇게 요즘 세대가 워라벨을 그렇게 중요시하면서도 왜 쉬는 것을 두려워할까 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가장 큰 이유는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여유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에겐 ‘여유라는 공백’만큼 남들보다 뒤쳐진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잠깐의 쉼을 통해 남들과 크나큰 사회적 성과의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 느낌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여유는 바쁘게 달려가는 우리의 삶에 일종의 쉼표이다. 그래서 여유는 쉼표처럼 우리가 잠시 쉬면서 앞과 뒤의 일을 돌아보고 수정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또한 지친 자기 내면을 돌보면서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성찰하고 돌보면서 조금 못하면 어때? 라는 식의 마음을 가지는 것도 괜찮다. 우리가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니까. 다른 누구보다 내가 중요하다. 나를 놓치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어야 고여있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 가는 모습을 추구할 수 있다. 혹시 아는가, 여유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 생각지도 못한 영감의 산물들이 쏟아져 나올지. 3) 어떻게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유’라는 것을 즐길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해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지하철을 타면 버스를 타는 것만큼 외부 창밖의 모습을 편하게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여유가 필요한 날에는 굳이 일찍 출발해 버스를 타고, 창밖의 모습들을 훑으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곤 한다. 또 평소에 읽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나만의 취미를 만드는 방법도 꼭 추천해 주고 싶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 실내에 있다면,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린다. 물론 그리기만 좋아해서 그렇게 실력이 좋지도 않고, 유튜브 강의를 보며 조금씩 따라 그리는 수준이다. 오일 파스텔에 취미를 붙이게 된 이유는 강의를 보면서 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하는 행동에만 오롯이 집중했더니 근심이나 걱정거리를 잠시나마 잊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금까지 머리가 터질 것만큼 복잡해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무엇인가 성취하고 달성했다는 만족감이 어느 순간 흐릿한 머릿속을 맑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경우엔 집순이라 실내 생활을 즐기지만 혹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고 싶다면 당연히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현실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다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잠시나마 생활하는 것이 나를 더 관찰하고 의식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여유,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라. 하지만 중요한 건, 무엇인가를 거창하게 해야만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길을 가다가 한 편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을 보는 시간도, 누워서 따사로운 햇볕을 맡는 고양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유로운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하루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피곤하니까 얼른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허나 그 잠깐의 시간으로 사람들과 하루를 공유하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며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작은 시간들이 모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누군가의 말을 통해 위안받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작은 것 하나로도 웃음이 나고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유로움’만 즐기라는 것은 아니다. 여유로움은 역시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열심히 자기 일을 몰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정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해당 되는 말이다. 여유를 통해 업무와 여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고생했다 내 자신’이라고 말해보라고! [1] 김민지 기자,[그래픽] 20·30대 직장 선택 기준 조사 결과 ,연합뉴스,23.04.10, https://www.yna.co.kr/view/GYH20230410000100044?section=search [참고 문헌] 지속 가능한 취미, 여생을 함께할 최후의 보루, 브라보 마이 라이프, 23.06.01,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4572 김선우 스페셜MC대표, [김선우의 컬러스피치] 현대인은 왜 마음이 아픈 걸까?, 시사캐스트, 23.10.03, http://www.sisacast.kr/news/articleView.html?idxno=45758 장수인 기자, 현대인들의 마음은 힘들다-번아웃 증후군, 전북도민일보, 23.03.14.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7430 김민지 기자,[그래픽] 20·30대 직장 선택 기준 조사 결과 ,연합뉴스,23.04.10, https://www.yna.co.kr/view/GYH20230410000100044?section=search
제 6 호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그리고 나의 결심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영화<내 어깨 위 고양이, 밥> 中 연말이 되면 꼭 찾는 영화가 하나 있어요. 바로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입니다.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슨 영화 제목이 이렇게 입에 안 달라붙지? 너무 길어. 재미없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습니다. 자극적이고, 웅장하고, 화려한 내용의 영화에만 익숙해져 있던 머리라서 그런지 제목만 보고도 이미 잔잔할 것 같은 느낌에 자동으로 거부감이 든 것 같아요. 그러나 2021년의 어느 겨울에, 매년 만나는 케빈과 해리포터에게 무료함을 느껴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플릭스를 살펴보다가 당시 집 마당에 들락거리던 치즈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 고양이가 있는 영화 포스터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더라고요. 우연히도 추천받았던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었어요. 그때 후로 저는 매년 밥을 찾게 되었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아무런 희망 없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약물 중독자 제임스에게 귀여운 매력의 친화력을 가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오고, 그의 인생이 180도 변화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180도 변화라고 한다면 대개는 드라마 속 선했던 주인공이 악당을 만나 불의에 맞서 180도 변하는 것, 혹은 가난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부잣집을 만나 이전과는 다른 부유한 인생을 살게 되는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실 것 같아요. 그러나 제임스에게 찾아온 것은 악당도, 부잣집 자녀도 아닌 그저 작은 고양이였습니다. 제임스는 당시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여건이 너무나도 취약했던 터라,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이를 극복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 제임스에게 어쩌면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처럼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 거죠. 그렇게 제임스는 부족한 형편으로 고양이를 치료하고, 밥을 주는 데에 전념합니다. 고양이의 외롭지만, 어딘가 줏대 있어 보이는 모습에 제임스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지도 몰라요. 더불어 친절한 이웃 베티를 만나 고양이에게 ‘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밥과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됩니다. 어둡기만 했던 제임스의 인생은 점차 환해지게 되었어요. (이때 밥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저희집 마당에 놀러 오던 고양이의 이름도 밥이 되었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함께 전할게요. 정말 똑같이 생겨 이 영화에 더 애정이 갔을지도 몰라요) 제임스가 혼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그의 근처를 지날 때 5초 정도 귀에 맴도는, 사람들이 도심 속 가게 앞을 지날 때 아주 잠시 귀를 스치고 지나는 한낱 배경음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예요. 제임스가 아무리 거리에서 ‘빅 이슈’ 잡지를 팔며 노래해도,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를 지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제임스의 어깨 위에 오른 밥의 모습을 보게 돼요. 그러고는 제임스와 밥에게 호의를 표하며 영국 시내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제임스는 이렇게 밥 덕분에 버스킹 공연도 흥하게 될 뿐 아니라, 잡지 판매에서도 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아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죠. 그는 거리에서 만난 밥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밥이 아닌 제임스의 삶 그 자체에 주목한 한 출판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할 기회까지 얻게 됩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통해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만을 향하는 제임스와 밥의 모습은 희망과 용기, 사랑의 힘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는 ‘희망’은 ‘희망’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개운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잊어버리고 마는 기분 좋은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자신에게 생기는 일들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자기 집에 찾아온 고양이를 못 본 채 내치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고,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의 우연의 선택들을 한 것이죠. 이 선택들이 지금의 제임스를 만들어 준 것이고요. 저는 스스로를 믿고 주위에 나를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갈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말이죠. 제임스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관객들의 호응과 반응이 중요한 사람이죠. 그는 직접 작곡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가 아무리 약물 중독자에,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과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이 버스킹 장면들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의 옆을 지긋이 지킨 밥과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한둘 늘어나는 것을 장면마다 보여주며, 그가 자신의 삶과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존재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선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의 나를 향한 신뢰와 깊은 애정이 주는 존재는 한 개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힘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열정'과 '용기'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제임스처럼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두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난 어떤 노력을 해왔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제임스는 너무나 힘겨운 상황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됨을 바로잡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하죠. 그런 제임스의 모습이 요즘 들어 영양가 없는 고민만 하며,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리숙하게 헤매는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그러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정을 가지고, 앞만 보며 몰두해 보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이 생각은 저에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볼 용기를 얻게 해 주었죠. 실패하더라도, 훗날 내가 못 해 본 것에 대한 후회하지 않게끔 도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용기 말이에요. 이를 기점으로 저도 새해에는 다양한 것들을 많이 경험해 보며, 제임스처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고, 밥처럼 든든한 주변인들과 함께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저에게 큰 용기와 열정을 심어준 것처럼, 이 영화는 마치 희망을 비춰주는 등대 같습니다. 제임스의 상황이 현재 캄캄한 동굴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두움을 극복하는 면과 동시에 영화 전체에 밝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소소한 따스함을 전하면서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줘요. 여러분의 몇 번이고 돌려보는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인생 영화와 그 이유도 궁금해지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그 이유를 찾아 이렇게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그 작품을 재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는 듯해요. 영화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끝과 시작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날은 슬픔에 허우적대다가, 또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새롭게 태어난 것 같다며 이러한 모든 고통과 상처, 괴로운 밤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하죠.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날들도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여려 우연들과 자신의 그 순간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내비게이션처럼 누군가가 길을 안내해 주지도, 묻는다고 답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내가 담겨 있는 상황 속에서, 나의 길에 맞는 최적의 선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미 충분히 많은 선택을 거쳐왔으니까요. 어두운 새벽이 가고 환하게 해가 뜨듯이 2024년에도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삼아, 한없이 또 발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문헌] -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 문자영, ‘여전히 희망,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 위드인뉴스. 2020.12.16.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69&category=170&item=&no=23664> - 김민지,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외', 경남도민일보, 2021.06.28.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65391>
제 6 호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뮤직비디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아이유> 中 나는 어린 시절 밥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자기 직전까지도 불을 켜놓고 한 번 읽기로 정한 책은 절대 내려놓지 않는 아이였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몇 페이지이건 집중해서 한숨에 읽을 수 있는 나름의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시리즈물의 전집이 있으면 무조건 1권부터 시작해 읽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고, 아무리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생각과 의견을 정리해 글을 쓰는 데에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냥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집중력이 약해지더니 요즘 들어 책의 첫 장을 넘기기도, 아니 책을 한 권 시작하기도 어려워졌다. 취미로 찾아 읽던 독서가 의무감에 읽는 독서가 되어버렸다. 책을 자주 찾지 않다 보니, 큰 고민 없이 술술 써지던 글도 이제는 혹여 괜히 겉멋만 잔뜩 든 엉뚱한 문장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어 한 자 한 자를 써 내려가기가 두렵다. 겨우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혹은 한 문단을 쓰고 나면 나를 쳐다보는 듯한 검은 화면 속 스마트폰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 「생각하지 않는 사람(The Shallow)」에서는 인터넷이 자신의 정신적 활동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나는 엄청난 양의 글을 읽고, 또 적어야만 하는데, 그냥 훑고만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국어교육과’라는 주전공과 맞지 않게 독서에 어려움을 겪으며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 부끄러울 뿐이다. 수업 듣는 과목 중,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발문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여기저기 건너뛰며 주요해 보이는 부분만 골라 읽다, ‘독서를 위한 발문’이 아니라 ‘발문을 위한 독서’가 되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마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반성하라고 자신에게 외치고는 첫 장을 다시 펴는 것이 다반사였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화되었다. 무언가를 잘못 입력했을 때는 그저 ‘되돌리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마우스 드래그를 통해 오른쪽에 있던 것을 왼쪽, 위, 아래로 옮기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인터넷의 자료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일도 몇 초면 이루어진다. 반면에 종이 위에 한 문장을 써내려 가는 것에는 꽤 많은 애정이 들어가며, 나만의 글씨체로 나만의 글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정성이 가득 필요한 일인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종이 위에서는 그 무엇도 수정할 수 없으며 공책 한 장을 찢거나 수정테이프, 지우개로 박박 지우며 자국이 남는 것에 속상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필기 앱을 사용하다가 종이로 넘어가 필기할 때 혹시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손짓한 적이 있는가. 나는 부끄럽게도 스마트 기기에서 사용하던 버릇이 종이에 나타나서 몇 번이고 허공에 ‘확대’와 ‘축소’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스마트 기기보다 종이를 사용한 시간이 훨씬 길지만 이미 그러한 기기에 본인의 뇌와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두렵고 한심했다. 뇌가 이미 아날로그 세상보다는 디지털 세상과 더 친해져 버린 것 같았다.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몰두하기도 힘들어졌다.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 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형성되고 발전하여 우리가 사고에 필요한 영역을 쓰지 않게 되면 이 영역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이는 우리가 디지털 매체에만 너무 의존하게 되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아날로그적 기능이 다른 자극적인 매체 기능에 대체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디지털 세상, 돌아온 아날로그 세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이 늘 옆에 있다. 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혼자가 아니다. 자기 전에는 어두운 방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하여 잠들고,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에도 우리는 늘 함께한다. ‘뭐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10년, 50년이 지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더 고민하려 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에만 우리의 뇌를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디지털이 뇌를 다 감싸버리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아날로그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요즘 사진을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보정되는 너무나도 고화질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 시절 감성을 담아야 한다며 구석에 보관해 뒀던 옛날 스마트폰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옛 감성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흐릿한 필터가 씌워지는 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레코드판의 감성이 좋다며 예스러운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고, 프린트 한 번이면 될 것을 필름 카메라를 가져다가 인화한다. 누군가 보면 ‘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 이런 아날로그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감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표식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기기에 지친 뇌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게 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독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감성을 채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의무감에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고심 끝에 선택한 도서와, 읽기로 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면 분명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아 디지털 시대 속 ‘쉼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초대해 주며, 그 안에서 주인공의 감정과 고민에 공감하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 느끼는 종이의 촉감과 향기는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내는 일종의 여행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종이와 펜을 꺼내 주섬주섬 적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이처럼 책이 선물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고, 우리의 시선을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돌려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게 함이 분명하다. ‘수많은 책이 보여주는 과묵함 덕에, 또 이 책들은 자신들을 정확히 필요로 하는 독자가 다가와 서고 내 고정석에서 자신들을 빼내 줄 때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독서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책은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이를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이를 읽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 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괜히 날이 좋아 뚜벅이 산책을 시작해 보자. 한강에 지는 일몰이 좋아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고, 노래를 듣다 풍경을 바라봤을 때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감성이 현재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별거 없다. 내면의 감정과 소통하고, 스마트폰에 열중하다가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주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현실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것. 사유의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은 효율성과 신속한 만을 강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조금은 느리기도 한, 문화일 수 있다. 다만,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오래 지속되며, 어딘가 몽글한 그리움을 주기도 한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기에, 디지털과 온전히 멀어질 수는 없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둡게만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찾아, 함께 공존해 나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차지해 버린 디지털 세상에 위기감을 느껴 자신의 삶을 한 걸음만큼, 아니 반걸음만큼이라도 감성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려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감성을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대화하고, 독서를 하고 이런 사소한 것 말이다. [참고문헌]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재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길, 종이책’, 우버인사이트. 2018.03.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윤세미, ‘"엄마 옛날폰 제가 쓸래요"…구식 기기에 열광하는 10대들, 왜?’, 머니투데이. 2023.01.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디지털 시대 속 주목받는 아날로그…"'디지로그' 제품이 뜬다"’, 파이낸셜뉴스. 2022.04.29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제 6 호 설악 오색 케이블카 착공 즈음에
정기자 임지혁 jihyuki@outlook.com 아마도 모든 것이 태초부터 균형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한다. 가령 어릴 적의 사회과부도를 머리 속에 떠올려보면 수자원이 풍부한 남해 지방과 논밭이 펼쳐진 호남지방, 교통이 편리한 대전이나 대구 등 지역마다의 특징이나 강점에 대한 내용들이 기억나고는 한다. 그런데 수업의 내용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 불량 학생이었다면 그보다도 다른 내용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자원도 없고 논밭도 발달하기 어려우면서 교통도 불편한 불우한 지방. 영동이라는 지방도 그런 곳들 가운데 한 곳이다.[1] 아마 그곳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 싶다. 당연한 일이다. 그쪽에는 사람이 잘 살지 않는다.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에서 오기에도 불편하고 남쪽에서도 오기에 불편하니 사람들이 모일 일이 없는 동네이다. 그나마 북쪽의 원산에서 오가기에는 편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쪽은 이미 오래 전에 막힌 길이다. 수자원이라 해봐야 오징어와 황태, 그런 소규모 건어물 위주로만 발달하였고 태백산맥 동쪽으로 몇 km 남짓한 평야에서는 제대로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먼 옛날에는 낙랑, 동예, 옥저. 이런 곳들의 세력권이었다고는 하지만 변변한 유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그쪽 동해안에는 사람이 잘 살지 않는 데다 먹고 살 거리도 별로 없다. 이번의 이야기는 근세 그곳의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내용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사람들이 택한 첫 장소는 설악산이었다. 이 글의 독자들 가운데 설악산이라고 한다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산 이름이야 들어본 사람이 많겠지만 세부적으로는 기껏해야 동화로도 출간된 오세암 설화 정도나 알지 않을까 싶다. 대청봉이나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그런 이야기들은 나이대가 조금 올라가야만 대화가 통하고는 한다. 설악은 원래 금강산 옆에 있는 산 정도로 여겨졌다. 금강산과의 거리도 멀지 않아서 금강산이 이미 전근대에 국내외로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말 그대로 부속된 산 정도로, 그나마 절경이던 울산바위 정도가 유명하다는 정도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소외되던 설악산의 진가를 발견한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제 당국이었다. 당시 금강산선 철도 개통 등 금강산 관광 개발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일본은 그 부근에 있던 설악산의 가치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같이 심미적인 요소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질적으로는 동해선 철도 건설에 발맞춘 착취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945년의 광복으로 설악산 관광이나 동해선 완전 개통은 미수에 그치고, 해방 후 경제난과 전란으로 설악산 일대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특히 전란 때 설악산은 격전지 중 하나였다. 그러던 설악산의 운명을 뒤바꾼 것이 군사정권이다. 비민주적으로 집권한 그들에게는 권력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했으므로 경제 발전은 그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성과이자 근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경제적 상황은 인구가 많은 호남 지역에 대해서도 홀대론이 나오는 마당에, 인구도 적고 산업이 발달하기도 어려운 영동 지역에 투자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설악산이 한국의 요세미티’라니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설악산 관광 지구의 개발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영동지방에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발전에 대한 증표였다. 실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휴가 때 설악산 비선대 등지에 종종 방문했다. 1978년 11월의 생전 마지막 생일도 설악산 관광호텔에서 맞이했다. 설악산은 점차 관광 단지로서 개발되었다. 1970년에는 그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1971년에는 지금도 명소로 남아있는 케이블카가 (박정희의 사위인) 고 한병기 씨가 사업권을 흭득해 운영을 시작한다. 이 즈음 설악산의 입구나 다름없던 이른바 ‘설악동 170번지’는 도회지와 다를 바 없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호황은 그곳 사람들의 일터가 되어주었던 명부(明部)와, 상인이나 숙박업소의 폭리나 유흥업소의 대두와 같은 암부(暗部)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 후로 설악동은 두어 번의 변천을 겪는다. 처음은 1978~1979년 즈음에 설악동종합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170번지에 살던 사람들이 공원에서 더 떨어진 곳으로 더 바깥쪽으로 쫓겨난 것, 그리고 그 즈음에 박정희 정권이 끝을 고하는 변화이다. 하지만 관성이라고 할지 설악동이 그 직후에 몰락한 것은 아니다. 이 변화로 비록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관광 개발 사업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사라졌지만 90년대까지도 그곳은 상업적으로 성황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그 후의 점진적인 변화로서, 적어도 1999년생인 필자가 살던 어릴 적의 설악동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이렇게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몰락, 이것이 두 번째 변천이다. 만약 지금 설악동과 소공원에 간다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숙박업소들은 완전히 몰락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폐허가 되었다. 반면 공원에 도착해서 단풍 속 풍경에 녹아든 켄싱턴 호텔에 다다르고, 권금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게 되면 그 일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케이블카는 여전히 만원인 채로 권금성을 오가고 있다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영동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즉 설악산의 이야기는 명백히 해피엔딩이 아니다. 설악산은 그 때 그 곳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지속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는 않았다. 대신이라고 할지, 그 후로 영동지방의 중심지는 바닷가 쪽으로 옮겨갔다. 주된 산업은 여전히 관광업이지만 이제는 그 배경이 설악산이 아닌 동해 바다가 된 것이다. 그 일대의 대표적인 시장이던 속초중앙시장이 언젠가 그 정식 명칭을 관광수산시장으로 바꾸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만석닭강정’이라던지 하는 업체들도 모두 이 시기에 성장한 곳들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영동지방은 확실히 환경이 나아진다.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이 양양국제공항으로 통합되며 항공 교통편이 불편해졌다고 하지만, 도로교통은 44번 국도와 미시령터널, 7번 국도가 점차 정비되면서 확연히 좋아졌다. 여기에 서울양양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까지 개통하면서 어느새 영동 지방은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과거, 눈이 내리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고갯길을 넘어야만 했던 시절에 비하면 천지개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춘천속초선이나 동해북부선의 철도 노선도 개통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곳의 미래는 마냥 장밋빛으로 보이기만 한다. 속된 말로 집값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의 영동에서 종종 어두운 과거를 바라보고는 한다. 예전처럼 관광산업으로 그곳은 부흥하고 있고, 한편으로 교통편도 좋아졌으니 과거 설악산의 호황처럼 그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도대체 누가 고성 속초 양양에서 산다는 말인가? 그곳에는 번번한 대학교도 없고, 산업단지라고는 조그마한 농공단지 몇 곳이 있을 뿐이며 일자리라고는 아르바이트나 노인일자리사업 정도가 전부이다. 그저 관광지에다 노후의 은퇴지, 국가 차원에서의 5공화국과 6공화국 모든 정부의 영동에 대한 인식은, 그 오진 곳에까지 경제 성장을 일구었다고 자신만만할지는 모르겠지만 박정희 때의 그것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셈이다. 그 때에는 나라가 가난했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지금은 무어란 말인가. 사람들은 밥을 굶지는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생존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오색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고 이곳이 부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지역균형발전, 뭐 그런 구색 좋은 이야기를 붙여서 사업이란 걸 한다지만 볼품없는 그곳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 정도의 떡고물이나 떨어질 뿐이다. 그딴 돈 꾸러미를 대준다고 해보아야 어디에 쓰겠는가.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명부(冥府)의 샛길을 지나왔다. 지역균형이라는 목표는 이미 끝장났고, 그런 곳이 영동 뿐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아니, ‘서울 사람인 우리들’에게는 별 일 아니겠지만 말이다. [1] 영동지방이라는 말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 지방을 의미하는 말로써 강릉이나 동해 일대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영동 북부, 즉 고성, 속초, 양양에 대해서 다루기로 하겠다. 이는 영동의 남부 지방은 영동고속도로, 철도 노선 등으로 북부와는 맥락이 다소 다른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큐레이터. (2023). 일제강점기 설악산 대청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루트파인더스. http://www.routefinder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9 최재도. (2011). <기억 속의 설악1번지> ‘그곳’에서 ‘그때’를 만나다(3). 설악신문. http://www.soraknews.co.kr/renewal/kims7/bbs.php?table=news&query=view&uid=22775 김홍준. (2022). 스러지는 설악동 … 가게 사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유령 나올 것 같죠?”.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3161#home 최기영. (2015). [미공개 기록 강원도는 대통령들의 안식처였다]박 전 대통령의 생일 아침식사는 비선대 감자부침 한접시. 강원일보. https://kwnews.co.kr/page/view/2015010600000000167 이승용. (2016).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 가열, '박정희 사위 한병기 특혜' 재조명. 비즈니스포스트.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141 이미지 출처(표지) 박서보. (1977). 묘법 No. 18~76~77. 현대화랑. https://hyundaihwarang.com/?c=artist&s=1&gbn=slider&gp=1&ix=160
제 6 호 너 혹시... T야?
정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유행-MBTI=0 ? “너 혹시 T야?”,혹시 당신도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유행어는 유튜브 채널 <밈고리즘>의 폭스클럽 시리즈 속에서 시작되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헌팅 계획을 세우는 김지유와 한지원에서 허미진은 공감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시킨다. 그때 그녀들은 말한다. “언니 T야?” MBTI,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MBTI 없이하는 대화는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었다. 나는 첫 만남에서 할 말이 없을 때 말한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럼, 상대는 말한다. “뭘 것 같아요?”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고민한다. 음, 저 사람은 말수가 없어 보이니까 일단 I, 아까 밸런스 게임을 했으니까 N.. “INTJ?”하고 MBTI 유형 중 하나를 말한다. 지금 이 글은 읽는 당신도 이 문답을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해 봤을 거라고 확신한다. 또 ‘나는 휴일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휴일이면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한다! ’같은 뻔한 질문으로 이루어진 인터넷 테스트 같은 것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한 가지 테스트가 유행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 테스트의 결과가 주르륵 올라와 있고, 곧 다른 테스트가 또 유행한다. Table 1 테스트릿 크리스마스 카드 성격 테스트 MBTI가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MBTI가, 성격검사가 뭐길래 개인적으로 MBTI... 사용하긴 하지만,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MBTI에 대한 몰입들이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선호하지 않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멸칭 때문이었다. MBTI 유형 중 하나인 INFP를 ‘씹프피’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작 MBTI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아닌가. 주변에 INFP들이 꽤 있지만, 그렇게 욕을 들을 만하게 살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계기가 있지만, MBTI가 싫다는 말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에 말을 줄이겠다. 하지만 유행한다는 것은 그만한 장점이 있다는 것. 지금부터 장점부터 단점까지, MBTI에 대해 상명대학교 학우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Q. MBTI가 있어서 좋은 점이 있나요? 슴우1 -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아요.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소개하기 편한 것 같아요. MBTI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삶인지를 짧은 시간에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가 자신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MBTI를 알면 대략적인 성격도 이해할 수 있고, 행동 방향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슴우2 – 심리검사의 대중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원래 심리검사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덕분에 심리검사에 대한 대중성이 높아진 것 같고, 더 나아가 상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MBTI가 있어 싫은 점이나 불편한 점이 있나요? 슴우1 - MBTI는 사람을 단순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성격을 유형화하다 보니 T 아니면 F처럼 이분법처럼 표현해서 변수를 지워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검사의 신뢰도가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MBTI 하나로만 표현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 것 같아요. 유형마다 차이가 있고, 그 유형 속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T, F 성향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강해지는 유형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저조차도 MBTI에 갇혀 더 깊게, 넓게 살펴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요. Q. MBTI, 어떻게 써야 할까요? 슴우2 - 첫걸음처럼 여기면 좋을 것 같아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첫 만남, 나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때처럼요. 그리고 검사를 시작할 때 MBTI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며,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MBTI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된 사실에 지나치게 얽매이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 직접 알아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우들은 MBTI를 즐기면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고, 앞으로 MBT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학우들은 이미 MBTI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고, 이러한 학우들을 보며 MBTI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의한다면 활용도가 어마어마하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성격 검사 같은 것에 열광해 왔다. 예를 들자면, 혈액형. 세심한 A형, 자유로운 B형 사교적인 O형, 독창적인 AB형. 이런 것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알록달록한 책을 펼치고 너는 어떻고, 나는 어떻고 살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얼마 전에도 친구가 헌책방을 다녀왔다가 B형 성격 특성이 적힌 책을 선물해 주었다. 추억에 잠겨 책을 펼쳤다. 그리고 ‘아니 이거… 잘 맞는데? 완전 난데?’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리 몰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적힌 내용이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 봐도…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까? 우리는 평생을 고민하며 산다. 나는 어느 학교로 진학할까, 나는 어느 학과를 갈까, 나는 어느 직업을 가질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규격화된 일상에 머무르며 나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사이에서 혈액형, MBTI 같은 것은 나를 찾기 위한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특히 MBTI는 일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교적 나의 성격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 나갈 단서를 얻게 된다. 우리 삶에서 MBTI는 사라질 수 없다. MBTI가 사라진다고 하면 다른 검사나 유형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늘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MBTI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찾기 위한 단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이 검사 접근성이 좋은 사회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MBTI에 대한 검사를 유지하되, 검사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보조 기구를 준비해 둔다면, 우리에게 더욱 유용하게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자료] 테스트잇 . 크리스마스 카드 성격 테스트 . https://test-it.co.kr/test174
제 6 호 가족복지학과 학생입니다
정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아, 힘든 일하시네요. 나는 가족복지학과다. 가족복지학과는 가족, 보육, 상담,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이중 나는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졸업 후 사회복지관 취업을 생각하고 있다. 나로서는 여러 번 고민하고, 현장을 경험해 보며 겨우 내린 결론이다. 내 계획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좋은 일 하시네요? 힘든 일 하시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갑의 위치보다는 을의 위치에 있을 때가 많고,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업무를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정한 내 진로를 단순히 좋은 일, 힘든 일로 만들어버리면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거나 흥미 있는 일을 누군가 한마디로 정의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말하는 이도 나쁜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칭찬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숨기고 하하 웃으며,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요!’하고 넘겨버린다. 아무리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내가 선택한 일이기는 해도, 옆에서 왜 힘든 일을 하냐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가끔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내 진로가 잘못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이 나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취업이 쉽지 않은 문과 계열 학생들도 비슷한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교권 이슈가 뜨거운 요즘 사범대나 보육 계열 학생들도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계열 학생들이 아니라도 이과, 예체능 계열 등 학생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경험하거나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학과와 학문, 그 위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요. 나의 경험과 동기가 가장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 자기소개서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대입 자기소개서와 1학년 때 썼던 자기소개서를 뒤적여보았다. 자기소개서에는 약간의 과장과 패기, 자신감이 섞인 엉성한 글이 있었다. 나는 인권에 관심이 있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를 생각해 보면, 차별에 대한 이슈를 뉴스로 마주하며 생긴 분노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인데, 누군가의 일상이 가시밭길인 그런 사회가 싫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의 분노’라고 한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는 착한 사람이 할 것 같은 직업이니 말이다. 이처럼 사회복지사 지망생, 사회복지사의 동기나 가치관은 모두 다르다. 더불어 사회복지사는 단순히 봉사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약자를 위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전문성을 가지고서 약자에게 직접 접근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후원을 받기 위한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마다 다른 원동력을 가지고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을 한다. 다른 직업들과 다를 바 없이 말이다.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학문을 생각해보면 나는 보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보육 교사라는 직업은 얕잡아 보일 때가 많다. 보육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무시와 폭언과 같은 이야기는 잊을만할 때가 되면 다시 뉴스에 등장한다. 최근 경기 북부 한 유치원에 찾아온 학부모 A씨는 “작품활동 시간에 왜 내 아이만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며 교사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보육 교사 또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임에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해 버린다. 보육은 다양한 범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비교적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은 서적을 읽는다고 의사는 아니고, 법전을 읽는다고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학과 관련 중 농담 하나를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것 하나. ‘문과여서 죄송합니다, 줄여서 문송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사회는 비대면·디지털화되면서 IT 인력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국내 은행들은 최근 어플리케이션 구축, 데이터 관리 기술 등에 관심을 쏟으며 IT 인재만 채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2022년 진행된 한국리서치의 '문과 학문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과 계열 학문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문과 계열 학문은 인간 내면의 성장에 도움이 되나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시대가 변화하며, 생산성이 강조된다.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와중에 인간을 다루는 학문은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중요도가 떨어지자, 전문성에 대한 인식 하락이 뒤따르고,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직업이든 남에 의해 딱 한 마디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없고, 결과물의 양을 같은 단위로 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성에 대한 것도 그러하다. 그 계열과 모양새가 다를 뿐이지, 전문성은 어느 학문에나 분명히 존재하며, 급을 나눌 수도 없다. 그냥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이, “문과가 최고다. 세상에는 결국 인문학과 문학, 사회학만이 승리할 것이며, 이과는 멸망할 것이다!”같은 말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해 왔던 계열은 주로 문과였고, 주변인들도 인문사회 계열 사람이 다수이다 보니 문과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문과 이외의 학생들도 분명한 고충이 있고, 전문성을 무시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 학과, 학문만의 전문성이 있고, 그 안에 학생들은 그 이상의 동기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생산성'에 몰두한 나머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을 가르고 등급을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인간이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혹은 두루뭉술한 신념과 가치로서 어떤 행동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지루하더라도 구석에 있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라든지. 이 글이 숨어있는 가치를 되찾거나, 더욱 빛나게 하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힘든 일 하시네요? 같은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진로가 변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동안 배워온 것은 분명히 좋은 경험일 테니까. 지금은 그저 내 전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이 무슨 전공이든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자료] 임주형 . (2021.6.17.) "문송합니다"…좁아지는 문과생 취업문, '문사철'은 오늘도 '한숨'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21061615070135803 장혁재, 서정인, 박정민 . (2023.5.16.) . “문송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 홍대신문 .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360 오민주 . (2023.11.20.) . 무릎 꿇리고, 툭하면 악성 민원... 피멍 드는 '보육 교권' . 경기일보 .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1119580064
제 5 호 에세이, 좋아하세요?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여태현, <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목차 中 에세이에 관한 단순한 궁금증으로부터 나는 서점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이 주는 고유한 향기와 책들이 나를 감싸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즐긴다. 베스트셀러 가판대 앞에 서서 책 제목을 구경하고, 마음이 끌리는 제목을 발견했을 때 한두 페이지씩 읽어보는 설렘이 좋다. 그렇게 내가 손길이 가는 제목을 가진 책들은 소설 아니면 인문학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사실 난 한 번도 제대로 에세이를 완독해 본 적도, 내 돈을 주고 에세이를 구입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에세이(Essay)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을 뜻한다. 이처럼 나에게 에세이는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꼭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저 위로와 공감의 따스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한 위로와 공감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인 이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서 보는 에세이들의 제목은 이러하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오늘부터 성장할 나에게’, ‘나의 봄날인 너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제목만 봐도, ‘너’와 ‘나’,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딱 이 정도였다. 제목만 보고 느낀 이 정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에세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세이를 찾아 읽고, 에세이 속의 삶을 동경하고 닮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 정리를 하고자 무작정 버스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발걸음이 자꾸만 소설이 가득한 책장 앞에 멈춰 섰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에세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세이가 가득한 공간에 가니, 제자리에 서서 에세이 한 권을 골라 읽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서가 위치를 프린트해 와 책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순간 궁금증이 생겨,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에세이... 좋아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얼핏 당황한 듯 보였지만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기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책 위치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있던 한 여성분은 “항상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만 하고,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저를 대신하여 예쁜 문장으로 대신 정리를 해주는 느낌이라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 해주었고, 한 피디의 책을 읽고 있던 분은 “친구가 자신이 써오던 일기를 에세이로 출판한 것을 계기로 처음 에세이를 구입해 읽어보며 에세이의 매력에 빠졌어요. 평소 관심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돼요.”라며 자기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 신간을 들여다보던 분께 질문을 드렸다, 그는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기도 했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대한 접점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쑥스러운 듯 답해주었다. 사람들은 에세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의 발자취가 궁금하여,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읽기도 했고, 나와 같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에세이를 읽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다른 빛을 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삶이라는 무대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다. 에세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무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누군가에게 인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섣불리 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을 책을 통해 정돈하고 치유 받는다.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점도 이러한 이유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장르는 몰입력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의 책장을 보면 더 흥미롭게 읽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설이었지만, 밑줄과 인상 깊은 페이지를 종이로 접은 부분은 에세이가 더 많았다.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며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구절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에 딱 드는 소설을 하나 발견하면 그 책에 몰두하여 새벽을 달려 결말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덮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어느 정도의 각색과 허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을 매료하는 매력이 있긴 하나, 에세이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쓴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에세이는 독서가 힘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페이지를, 원하는 시간에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간다. 그렇기에 이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사회에 더욱이나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분도 약속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서점에 와 에세이 읽고 있었다고 답한 걸 보면, 언제든 편하게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에세이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세이라고 안 읽을 이유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 나는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에세이를 읽고, 느껴봐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또 한 번 서점에 방문하여 에세이 한 권을 들어 몇 장 들춰보았다. 나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이 적은 이야기, 책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쓰여있었다. 단편적인 구절과 장면을 본 것이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고, 꽤 큰 힘을 얻었다. 평소에 위로와 공감은 나 혼자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서 극복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위로와 공감을 얻기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거나, 소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나에게 더 솔깃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에세이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이자 간접 경험이 되어줄 수 있겠다. 에세이를 읽으면 "저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와 같은 궁금증이 들며 나 혼자만의 사유와 사색을 시작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대면하며 나누는 대화는 생생하며 활기차고 재미있다. 다만, 매 순간 상대의 본 마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꽤나 머리를 쓰게 된다. 나는 보통 이야기를 하는 역할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에 놓였던 것 같다. 대면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내 말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돌아온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을 넘어서,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각하는 나의 성격상 이에 대해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에세이를 읽고 느꼈다. 에세이를 읽는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자유로운 나만의 것이 된다. 상대와 나 사이에서 머리를 쓸 필요도, 상대의 말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그저 글의 의도를 천천히, 나의 시선에서 여유롭게 사유하고 느끼면 된다. 에세이는 독자에게 주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 것과 같이, 에세이에도 여행 에세이, 그림 에세이, 감정 에세이 등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골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마음이 이해됐다. 결국 에세이를 읽는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따스한 호기심에 책을 펼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에 시작한 글이었으나 글을 쓰며 에세이의 매력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울릴 에세이 한 권을 만나 여러분들 앞에 소개할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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