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호 우리가 포기하는 것들에 대하여
정기자 송지민202110353@sangmyung.kr 저는 작년 겨울쯤부터 '포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포기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포기하면서 살아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난 반년 동안 제 머릿속에만 머물러있던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 N포세대 > :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 여러분은 혹시 '3포세대'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3포세대란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용의 지출 등의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2011년 경향신문의 특별취재팀의 기획시리즈인 <복지국가를 말한다>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로, 각종 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엔 이에 더해 5포세대(3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7포세대(5포세대+꿈, 희망)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여러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세대가 왔다 하니 정말 마음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위 N포세대에 해당하는 것 중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은 저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고려하기엔 저 스스로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포기했고, 포기하는 중인가요? 아마 연령대별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비슷한 것들을 포기하겠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연령대별로 포기한 것들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아래의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무엇을 포기했는지 읽어보며 공감도 하고 스스로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제가 어떤 질문을 드렸는지부터 소개하고 갈게요. 아래 질문들은 '포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순수하게 타인의 '포기'가 궁금해서 떠올린 것들이에요. 여러분도 먼저 아래 질문을 읽고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 본 다음, 인터뷰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당신은 살면서 무엇을, 왜 포기하셨나요? 2.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답변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그것들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얻은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10년생 > #1. 저는 전학을 오게 되면서 원래 학교에 있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지요?! 전학을 가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 네, 당연히 돌아가고 싶어요.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과 다시 한번 놀고 싶고, 요즘도 '그때 안 떠났다면?'이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기 때문입니당! #3. 제가 얻은 것은... 더 좋은 교육 환경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를 옮기면서 사교성이 발달한 것 같습니당! < 00년생 > #1. 어렸을 때부터 사범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내신이 걱정되어 원래 가고 싶었던 외고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원하던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원래의 바람대로 외고에 진학했다면 제 인생이 학업적으로, 인간 관계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끔 생각해 보기는 합니다. #2.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고에 진학해서 남녀공학의 산뜻함?도 느껴보고, 영어를 좀 더 집중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기숙사에 살면서 친구들과 남다른 추억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고등학교를 갔다면 어떤 대학에 진학했을지도 궁금합니다. #3. 일단, 저와 유머코드도 성격도 정말 잘 맞는 소중한 친구를 한 명 만났습니다. 이 친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고, 스무 살 때부터 제 인생에 없던 적이 없었을 만큼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를 만난 것이 스무 살 때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전역 후에 만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바빠서 못 보는 날도 있지만, 보는 날이면 그날 하루가 편해지고 웃음이 납니다.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계속 얼굴 보고 연락하며 더욱 친해지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중학교 3학년 때 했던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사범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89년생 > #1. 직장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2. 돌아가기 싫습니다. 결혼해도 재정적 여유가 없다면, 더 힘들고 불행한 삶을 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3. 제가 얻은 건, 현재의 안정적인 삶과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인 것 같습니다. < 70년생 > #1. 저는 직장 생활을 30년간 해온 평범한 사람입니다. 포기는 아니구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가정 형편상 갑작스럽게 돈을 벌어야 했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네요.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30년이나 하고 있으니 즐거운 직장 생활은 아니겠죠. #2. 다시 30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기술을 배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네요. 지금도 엔지니어지만, 카오디오튜닝 쪽 일을 배우고 싶었어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갖고 차분히 기술을 배워 카오디오 샵을 운영해 보고 싶네요. #3. 급하게 들어간 직장이긴 하지만, 한 직종에서 장시간 일한 덕에 기술 습득도 많이 했습니다. 지겹긴 하지만 천직이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근무 중입니다. < 59년생 > #1.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가정 형편을 생각하여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2.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이후 현재까지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왔으며, 지난 세월에 대해 충분히 만족합니다. #3.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멋진 경험을 하여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지금'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방금 전에 제가 한 말,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누군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 크고 작음을 나누다니요... 저도 모르게 제가 겪어보지 못한 연령대에서 발생한 포기는 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요. 우습게도 처음에는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마냥 대단한 것을 포기해야 진정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포기'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보았어요. (지금부터는 저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해요.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해요.) 저는 열 살 아래 동생이 있어요. 동생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태어났고, 당시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 중이셔서 많이 바쁘셨어요. 저는 동생이 너무 귀엽기도 했지만, 제가 동생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학교와 학원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생과 함께 보냈어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랑 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어요. 이걸 포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동생이랑 함께한 시간이 굉장히 행복했거든요.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또 이야기해 보자면, 저는 지금의 학과에 진학하기 전에 배우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었어요. 그렇지만 수능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고, 방황하다가 결국 그 분야를 제외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지금이 만들어졌어요. 이건 포기가 맞는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의 기억을 꺼내어 적어 보니 당시에 느꼈던 아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포기'라는 것은 그런 걸까요? 무엇을 포기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아쉬움과 슬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얼마나 크게,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지가 중요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듣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각자 다양한 이유로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사정이나 환경에 의해서, 혹은 다른 무엇이나 누군가를 위해서 같은 이유들이요. 그런 포기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후회나 미련, 슬픔 같은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남을 텐데(반드시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어느 노랫말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기억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쓸 수도 없을 텐데 말이죠. 사실 이 글의 마무리를 짓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말을 적어야 여러분께 지혜로운 답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도 그 답을 모르겠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저조차도 제 안의 남은 것들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뭔가 아는 듯이 말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꼭 해결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떠올랐어요. 그러한 기억들과 그들에 의해 남은 마음도 '지금의 나'의 일부인데 말이죠. 조심스럽게 제가 내린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들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의 나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자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왜, 유명한 책에도 나와 있잖아요. “The Present Is The Present Moment!” 현재가 영어로 present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제 정말 글이 끝나가고 있네요. 위에 제가 한 말들이 결코 답은 아니지만, 저는 단지 여러분이 포기로 인한 어느 감정들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이 더 나은 현재를, 그리고 그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시길 바라며 이번 기사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제 5 호 전화가 무서운 나, 콜 포비아인가?
수습기자 이선민 202115029@sangmyung.kr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연락이 오는 상황이 어찌나 긴장되고 무서운지, 전화를 받기까지 많은 심호흡과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 구인 당시, 문자로 지원하면 상대방 쪽에서 전화를 주시는 방식이었다. 전화가 무서웠던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하고 끊길 때까지 기다린 뒤에 할 말을 정리해서 문자로 연락을 드렸다. 전화해야 할 상황이 오면, 할 말과 예상되는 답변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리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한 상태로 전화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잘 대변해 주는 단어가 생겼다. 바로 “콜 포비아”이다. 콜포비아는 Call(전화) + phobia(공포증)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전화하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콜포비아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전화를 두려워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주는 하나의 장애 요인이라고 정의하는 사회적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콜포비아 현상은 왜 생겨났고,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Call(전화)의 시작] 전화가 처음 특허 신청이 된 해는 1876년이고, 1993년 스마트폰은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제조 업체 ‘IBM’이 박람회에 처음 선보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00년은 훌쩍 넘긴 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화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먼 거리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여론 조사나 텔레뱅킹 등에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전화를 활용한 다양한 영역의 확장은 우리에게 더욱 편리하고 영위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던가, 이러한 과도한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난관을 주었다. 편리한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화를 편리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는 불편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즉 과거 영광의 전화는 더 이상 소통의 수단이 아닌, 애물단지처럼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 1] MZ세대가 선호하는 소통 수단 [콜포비아에 대한 생각] 콜포비아라는 현상은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10대, 20대 층에서 전화에 대한 높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처음 사회로 발을 내딛는 2-30대, 일명 MZ세대는 SNS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비대면 소통에 익숙하다. 이러한 그들의 사회진출 시기가 우연찮게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환경요소가 겹치게 되면서 더욱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주변에만 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콜포비아 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중장년층에도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서, 단순히 젊은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대부분 사람이 콜포비아를 느끼는 이유는 낯선 누군가와 대화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즉각적인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문자와 달리 생각할 시간이 없이 즉각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전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더듬증과 지나치게 긴 침묵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을 못 했다는 자책감과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문자, 메신저로 소통하는 비대면 환경은 기술 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비대면 환경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 대신, 내가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을 한 번 더 다듬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음에 더욱 깊이 있는 답과 표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여, 더 넓은 범위의 의견 표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보다 심도 있는 대화와 누군가의 의견을 좀 더 깊이 생각할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콜포비아에 대한 부정적인 현상과 해결에 가고자 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콜포비아는 ‘face to face 소통’에 약해서 글의 문맥만을 가지고 파악하던 부분이 오히려 직접 대면했을 때, 상대방의 감정과 뉘앙스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보다는 현재 상황에 놓인 나에 대한 이해를 먼저 요구하게 되면서, 점차 사회적 도태가 이뤄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인간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의 소통과 교류를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야 하고, 끊임없이 행해야 하기에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우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콜포비아 현상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와의 대인관계를 약화하고, 결국 소통의 단절로 이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점이다. 문자와 같은 비대면적 요소를 통해 소통은 가능하지만, 결국 직접 목소리를 듣고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결국 사회로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생각해 보면 현재 21세기 우리는 IT 발달로 인해 전자기기 및 미디어에 많은 노출이 되어있고, 대면해서 대화하기보다는 메신저나 문자를 통한 대화의 빈도가 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콜포비아가 해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과 대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다루고 있다. 실제로 스피치 학원에서는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을 만들어 실전처럼 가장하여 상황극을 벌리기도 하고, 원활한 대화를 이뤄지게 하려고 10분 대본 작성이라는 수업도 있다고 한다. 또한 병원에서도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전화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 현상은 새로운 사회적 풍조로 자리를 잡았다라는 방증이라고 여긴다. [콜포비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콜포비아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대표적으로 전문가들은 '단계적 노출 요법'을 제안한다. 단계적 노출 요법이란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나 환경에 점진적 혹은 단계적으로 노출되면서 불안과 공포를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즉 예를 들어, 혼자 말하거나 편안한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긴장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 단계 나아가 가게에 가서 직접 주문해 보기, 내 생각을 남한테 전달해 보기 등의 방안으로 근본적인 두려움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 콜포비아의 모습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고,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들도 많았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걱정이 앞서는 사람에게 상대방도 나처럼 전화하는 순간이 어렵고 힘들 수 있음을 인지해 보자. 처음부터 완벽해지고자 하기보다는 하나씩 순서를 밟아 풀어나간다는 마음으로 극복의 과정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안부 인사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점점 비대면화되는 사회에서 꼭 콜포비아는 누군가가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문제로만 여겨져야 하겠냐는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따라 우리의 대화하는 형태는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 가게에 전화를 직접 걸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배달 앱에서 손가락으로 몇 번 움직이기만 하면 부수적인 행위 없이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무언가를 극복하려고 하는 모습은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모습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이상적인 사회의 기조와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극복하려는 모습은 오히려 모순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1. 통화가 두려운 불안장애, 당신도 ‘콜 포비아’ 인가요?/ 서울성모병원 블로그, https://naver.me/5mr5K68T, 21년 06월 04일. 2. 코로나 종식, Z세대에 남긴 불편한 유산 '콜포비아' 극복법은? [이슈 산책],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601446635607936&mediaCodeNo=257&OutLnkChk=Y, 23년 05월 11일. 3. 전화벨 울리면 가슴 쿵쾅쿵쾅, 신종 유행병을 아십니까, 조선일보, 최인준 기자,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5/13/PVVU3IFBCRGM3BY3XTBGJU6ZIE/, 23년 05월 14일. 4.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워요”...젊은층 통화에 대한 부담감 느끼는 ‘콜 포비아’ 현상 나타나, 시빅뉴스, 윤유정 기자,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6, 23년 04월 19일. 5. ‘콜포비아’에 떠는 MZ세대… “학원서 대면 스피치 배워요”,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203/117729151/1, 23년 02월 04일.
제 5 호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정기자 임지혁 201710846@sangmyung.kr 성북에 가면 수연산방이라는 곳이 있다. 학교에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지만 직접 이어진 대중교통편이 없으니 자차 또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어렵다면 시간이 넉넉한 휴일이나 방학 때 방문하기를 권한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라서 이전에 소개했던 길상사와도 가는 길이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수연산방과 길상사는 언덕의 골목길에서 걸어서 서로 15분의 거리에 위치하므로 역전에서 버스를 탈 때에 어떤 버스를 탈 것인지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1111번 버스를 탄다면 수연산방으로, 성북02번을 타면 길상사로 향한다. 하지만 설령 버스를 잘못 탔다고 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두 곳 모두 멋진 장소이므로 어느 쪽으로 향하던 그 기억은 따스하게 남을 것이다. 다만 작년에 길상사에 대해서는 얕게나마 다룬 바 있으므로 이번에는 더 언급하지 않겠고, 오늘은 새롭게 수연산방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학부의 마지막, 졸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있는 기자가 한량한량 찻집이나 노다니는 것이 합당하느냐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마는 우리 자하 교지는 세상의 만사를 다루는 곳이다. 그런 교지의 생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날 좋은 때에 펜 한 자루 들고서는 세상 오만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9월의 첫날에 찾아간 수연산방은 일종의 전통 찻집이며 풍경이 좋은 한옥 양식의 건물에 앉아서 대추차 등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풍경이 좋고 차가 맛나다고,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간 것은 아니다. 근처에 많이 있는 왕돈까스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만 갔던 것도 아니다. 이곳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께서 1933년~1946년까지 기거하시며 작품을 집필하시던 유서 깊은 곳이다. 코로나 이후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로 우선 병원에 들르고선 곧바로 성북동으로 향했다. 1111번 버스에 앉아서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아뿔싸, 영업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다. 매주 월, 화요일에는 쉬고 11시 30분에 문을 열어 평일에는 18시, 주말에는 23시에 문을 닫는다. 오늘은 금요일이므로 18시까지 하지만 지금은 이미 17시로 마지막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난 참이었다. 결국 다음번에 다시 오는 것으로, 그 후기만큼은 교지의 인스타그램에 클립 뉴스로나마 게시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하면서 근처의 저녁거리 맛집을 찾아서 나섰다. 실은 선생께서 직접 당신의 자택에 찻집을 여신 것은 아니다. 찻집은 1999년 선생의 외종손녀가 당호를 내놓고 영업을 시작한 것이고, 원래의 당주였던 선생께서는 북으로 가셨다. 1946년의 일이다. 그 후로 반공을 내세운 과거 정부들이 월북했던 선생의 존재와 작품들을 금기시하다가 1988년에야 선생의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해금되며 ‘상허학회’ 등에 의해 연구와 출판이 진행된다. 이태준 선생을 알게된 것은 어느 글 하나 때문이었다. ‘만년필’이라는 단편 수필, 이전에도 구인회(九人會),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1]와 같은 근대 문학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당신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글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질, 한낱 조그만 한 물형에 일종의 애정을 폭로함은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임엔 감출 필요야 없는 것이다. 나는 만년필을 퍽 사랑한다. (...) 나는 다른 방면엔 박하더라도 만년필에만은 제법 흥청거렸다. 만년필(1934) 학등(學燈) 5월호에 게시된 글의 내용은 조선에서 굉장히 희귀했을 미국 보스턴제 ‘무아’ 만년필을 잃어버린 일을 담고 있다.[2] 요즘에는 쓰는 사람이 많이 없다지만 필자는 그 즈음에 홍대 일대에서 만년필을 한 자루를 잃어버린 적이 있기에 그 굉장히 안타까운 심정을 공감하면서 글을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짧은 글 안에서도 돋보이는 유쾌하면서도 읽기 쉬운 특유의 문체와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으므로 이태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곧이어서 찾아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이야기하겠지만 그다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얕은 지식으로나마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선생의 책은 ‘문장강화’다. 1946년에 수연산방에 계시던 적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이면서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적이면서도 굉장히 잘 읽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 책을 비롯한 실용 서적은 그 효용을 중시하는 이유로 굉장히 딱딱한 내용으로 구성하거나, 아니면 그 딱딱함을 조금 완화하고자 약간의 별개의 일화를 곁들이는 식으로 책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문장강화에서는 철저하게 글쓰기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문체가 어우러지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 교재가 아니라 소설 한 권을 읽고 있는 듯한 감상이 들게 된다. 여기에 정지용 등, 당대에 이태준과 친밀하거나 유명한 작가들의 글에 대한 비평 아닌 비평까지 곁들어지면서 근대문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읽기에 더더욱 재미있어진다. 필자가 자하의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당당히 신입 기자 교육 자료로서 선정하였는데 부디 누군가 한 번쯤은 읽었으면 싶은 바람이 있다. 이태준 선생은 철원 출신이다. 철원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일제시대에는 경원선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강원도에서도 손꼽히게 큰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시기에 남북 모두 철원의 지리적 중요성을 알았으므로 그곳에서 사투를 벌였고, 결국 철원은 휴전선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선생의 생가는 휴전선 이남에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그 흔적을 향해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태준 선생의 일생을 온전히 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원에 있는, 생가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와 2024년에야 완공될 문학관, 서울 성북의 수연산방 정도만이 한반도에 남은 당신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책은 잘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 이름에 김유정 선생의 이름을 붙이고, 특히 박경리 선생은 삶의 족적을 따라서 문학관을 세울 정도로 문학에 우호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굉장히 초라한 대접이다. 남과 북은 문학적인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생을 버렸다. 그 흔적마저 지웠다. 남은 선생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1946년 선생께서는 평양 조소문학협회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출발해 소련을 여행하면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 아르메니아 등지를 방문하였고 그 소감을 정리한 ‘소련기행’을 발표한다. 설령 그 글들을 읽지 않았더라도 위의 행적을 듣는다면 선생이 무엇을 보았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 최대의 공방전이 있었던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 그 참상 속에서 무사했던 수도 모스크바, 그리고서 펼쳐진 공업지대. 이러한 풍경이 조선의 한 문학가를 공산주의에 경도시켰던 것 같다. 혹자는 그 글을 두고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했다고도 이야기한다. 당대 소련공산당 내에서도 반발이 컸던 당시 스탈린 체계의 모순에 대한 통찰이나 지적이 전혀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어쨌든 그 글을 통하여서, 선생의 시각으로 볼 적에 그 당시의 상황, 그러니까 남조선로동당이 붕괴되고 1948년에 들어서야 북한보다 2년 뒤늦게 토지개혁을 실시한 남한의 정치적 상황이 선생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은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지 않은 선생은 전쟁이 끝나고서 월북작가로 분류되어 문학사에서 사라진다. 그나마 1988년에 선생의 이야기들을 해금시켰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고향 자락에 문학관을 하나 짓고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일 것이다. 북은 더욱 악랄했다고 평가해야만 하겠다. KAPF나 소련문학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실주의 창작이 강조되어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문학계 내적인 상황도 있었으나 그보다도 외적인 영향이 압도적으로 컸다. 김일성을 필두로 한 빨치산파(혹은 만주파)는 남조선로동당계의 남로당파, 고려인계의 소련파, 중국공산당계의 연안파를 숙청하며 초기 북한의 집단지도체계를 붕괴시켰고,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온전히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체계로 나아가게 된다. 북조선예술문학예술총연맹에서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던, 그리고 빨치산파와는 거리가 있었던 선생도 그 시기에 숙청되어 동쪽의 어느 오지로 가게 되었고 정권은 선생의 존재와 행적을 지웠다. 지금까지도 북한 정권은 선생을 복권하지 않았으므로 말년의 행적은 온전히 문학계 탈북자들이 전해준 입소문뿐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구인회 일원이자 친구였던 정지용이 충고한 바와 같이 조국의 서울로 돌아왔으면 좋았을까.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인회 구성원의 상당수는 월북하였고, 서울에 남은 정지용은 그 유명한 보도연맹에 가입한다. 그 시절의 많은 사람이 새로운 민국에서 더 나은 것을 꿈꾸었지만 두 권력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을 지웠고,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들과 그로 인한 선택지의 결말은 온전히 개인의 파멸로서 남게 되었다. 남과 북의 대립은 겉으로나마 사상대립이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못한, 수준 이하의 고집과 욕심, 그리고 포용이나 공감의 부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지금도 진행 와중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께서 도심의 한가로운 곳에서 찻집을 운영하시는 세상을 상상한다. 한국의 문학계에는 ‘69’ 다방으로 유명한 이상의 다방 경영 수난사가 유명하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번창하지 않았을까. 선생의 글을 읽을 때면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들면서 작품의 유쾌함과는 달리 선생의 이야기가 슬프게 마무리되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안타깝다. 만년필을 잃어버리는 때의 그 슬픔, 그보다도 한 시대에 대한 절대적인 유감. 이렇게 잡다하게 떠도는 생각들이 선생의 책을 많이 읽지도 못하고, 그저 한량한량 오늘처럼 그 자취를 떠돌고만 있는 이유라고 변명한다. [1] 에스페란토어로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일부 자료에서는 Federatio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으나 본문에서는 사전적으로 옳은 Federacio로 표기하였습니다. [2] 무어(Moore)는 1899년에 설립된 미국의 만년필 회사로서 당시에 양질의 필기구를 생산하던 유명한 기업이다 [ 참고 문헌 ] 1. 권성우. (2005). 이태준 기행문 연구. 상허학보, 14, 187-222. 2. 장영우. (2009). 그들의 문학과 생애 - 이태준. 한길사. 3. 이태준. (2003). 이태준 -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04. 돌베개. 4. 윤홍로. (2023-08-31 접속).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5. 신동욱. (2023-08-31 접속). 이태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 5 호 사유(思惟)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 당신은 사유하는 사람인가? 단순히 문해력의 문제를 뛰어넘어, 최근 들어 활자 자체를 읽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긴 글은 읽지 않은 채, 단편적인 내용만을 보여주는 것들만 선호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글이 길어지는 듯하면 화면을 돌려 다른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애초부터 활자 자체를 읽지 않으니, 어쩌면 문해력을 걱정하는 것은 조금 앞선 우려가 되어버렸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유해야만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 사(思) 생각할 유(惟).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유(思惟)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자 철학의 개념으로 본다면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사유의 의미를 매우 넓게 규정한다. 그의 의미에 따르면 사유란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의욕은 통상 의지의 능력으로 사유와 구별되는 것이지만 데카르트는 의지와 사유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의지의 자유와 사유의 자유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된 것은 그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하는 힘, 그 자체만으로 본다면 이는 현존하는 것이며, 사유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감각된 것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각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으며, 이것은 사유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문제 해결, 결정 과정, 논쟁, 논리적인 주장 등을 모두 사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개인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사유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유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인간관계를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 삶에 적용하는 것까지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독서’에 있다. 함께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그러나 요즘 들어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독서를 멀리하고, 올바른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 통계청(KOSIS)의 2009년도부터 2021년도의 평균 독서 권수를 비교해 보면, 해마다 평균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도를 확인해 보면 거의 두 달에 한 권 책을 읽는다는 의미이다. 독서 말고도 할 수 있는 취미나 매체 활동이 다양해진 시대인 만큼 독서보다는 더욱 자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꾸며둔 각자의 일과와 학업에 치여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하며, 활자 자체를 읽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기피하는 현상 또한 독서량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매체는 결코 책을 이길 수 없다: 매체의 흠 영상매체는 책과 달리 사유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내용을 흡수하고 저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적당한 쉼표와 마침표의 조화가 있어야 하는데, 영상매체는 우리에게 그러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영상 자체의 속도에도 쉼표가 없을뿐더러 우리의 머릿속 또한 우리가 사유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이나 화면뿐만 아니라 소리와 자막, 화면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차지해 다른 생각으로 뻗어 나갈 시청각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함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사유하지 않는 만큼 머리를 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정보 그대로 흡수하면 되기에 가성비가 좋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전, 휴대전화에서 틀어져 나오는 릴스와 숏츠들을 잔뜩 보고 잠이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아침에 일어나 그것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었는가. 그저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그 영상 웃겼는데 ...’ 정도로 끝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자신의 시선으로 쉼표를 찾아 읽으며 사유를 한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영상매체는 너무나 쉽게 다가와 이를 가공할 시간도, 내 것으로 완전히 흡수할 시간조차 부족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지 않는다. 영상매체는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과 같다고 느껴진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만 가져와 MSG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영상을 찾도록 한다. 너무나 광범위한 내용을 요약하고 함축하고 있기에 고작 1분 남짓한 영상이 그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매체는 결코 책을 이길 수 없다: 가득한 책의 매력 반면에 책은 영상매체와 달리, 음향도 이미지도,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 전환도 없다. 간혹 있는 그림과 사진에 빼곡히 적힌 글씨가 전부이다. 그러나 영상매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앞서 말한 쉼표와 마침표이다. 이는 우리에게 하얀 여백의 공간으로 다가와 우리의 속도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저 우리는 자신의 들숨 날숨에 맞춰 글을 자연스레 흡수하면 된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있는 띄어쓰기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자간과 행간의 조화는 우리에게 사유할 시간을 제공한다. 책은 영상매체처럼 시청각적 효과가 없을뿐더러 짧은 시간 내에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한 권을 온전히 다 읽어야만 나만의 생각을 구체화하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가를 돌아다니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책 한 권을 고르고, 다양한 책들의 제목을 보면서 혼자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는 시간도 물론 사유를 하는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대가 아무리 지나고, 사회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독서’를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기술과 함께 변화해 가는 사회 속 독서는 우리의 감성을 아날로그로 만들어 혼자만의 오랜 시간을 갖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사유를 하게 만드는 독서의 매력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영상매체와 전자기기의 등장으로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독서량이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전자책 등으로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존재하겠지만 전자책 또한 하나의 매체라고 보았을 때,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는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전자책을 이용해 독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자책은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점과 무겁지 않아 종이책보다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고, 싼값에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어 좋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책 한 권 정도 되는 값을 매달 지불하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손의 감촉, 종이책 특유의 향기까지, 종이책은 오감으로 그 자체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책을 읽는 그 순간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장을 한 권씩 채울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자책과는 달리 눈이 피로하지 않고 필기가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책 또한 하나의 매체로 본다면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아날로그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는 감성을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예 독서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독서하는 것이 낫겠지만 말이다. 책 향기가 가득한 세상이 온다면 작년 겨울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중, 남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빛나 보였고 멋있어 보였던 기억이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독서할 수도 있구나. 어쩌면 내가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했다고 한 것은 모두 핑계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되도록 가방에 한 권씩 책을 꼭 넣어 다니려 하고, 조금이라도 대중교통을 길게 이용할 때가 오면 그 책을 꺼내 가끔 읽곤 한다. 내가 그러한 선한 영향력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도 나로 인해 그러한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람도 담은 채 말이다. 앞으로 발전할 우리의 세상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올바른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이에 대해 적절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답을 하는 것은 이미 챗지피티와 같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필요한 질문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인공지능이 답한 것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그렇게 수정한 마땅한 근거까지 자기 생각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를 해야 하고, 사유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만 한다. 독서의 방법이 무엇이든, 책 한 권쯤은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며 어디서든 꺼내 읽는 멋진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무더운 여름 서점으로 북캉스를 떠나 우리 함께 책 향기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가 보자. [ 참고 문헌 ] 1. 사유[cogitation, thought, 思惟],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23.07.31.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1978&categoryId=41982 2. 통계청, 1인당 평균독서권수, 2023.08.01.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SSCL020R&checkFlag=N 3. 안지윤, 위기의 종이책, 종이책의 매력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2023.08.01. http://www.korea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9917 4. 메인사진_세월의 때 묻은 고서가... 역사처럼 ... 쌓여있는 곳...'대오서점' Ⓒ한국경제
제 5 호 외로움에 잠수하기
수습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어느새 사라진 그 청년> "면바지 한 벌, 청바지 한 벌, 정장 수트 한 벌 이렇게 있는 거니까 그래도 아직 30대면 대인관계를 많이 할 나이잖아요. 그런 거에 비해서 너무(옷이) 없는 편이긴 하죠. 이 현장 같은 경우는 제가 본 현장들 중에서는 나이대별로 따졌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독사 현장을 치우는 전문가가 방을 치우며 말한다. 과연 무엇이 이 청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림 1 출처 KOSIS (통계청, 인구총조사)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1인 가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고, 2022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했다. 2047년에는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20대에서 30대 청년 1인 가구는 약 5백만 가구였다. 2021년에는 2015년에 비해 약 2백만 가구 증가한 7백만 가구였다. 위의 표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25~29세의 청년들이 가장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30~34세가 그 뒤를 잇는다. 청년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관심을 받는 분야는 노년층과 중장년층의 고독사지만, 청년층의 고독사도 절대 적지 않다. 1인 가구와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20~30대 청년층의 고독사 비율은 6.3~8.4%로 나타났다. 청년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홀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 청년은 왜 사라졌을까?> 여기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불이익이 있을까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도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못하고 고립되었고, 곧 사라졌다. 주변인들은 그가 참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따스하지 않았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 치료는 받을 수 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신청하지 않으면 치료받지 못해서 일자리를 잃는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 또 다른 청년이 있다. 몇 년 전 서울 소재의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는 단 1점 차로 시험에서 떨어졌고, 날마다 공부하며 보내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끼니는 음료로 때우고 외출도 잘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있었지만, 혼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연락은 거의 끊은 상태이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 작년 시험에서 떨어지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유서를 쓰는 자신을 발견하고 약까지 먹고 있다. 청년 고독사를 발견하는 이들은 주로 집주인이나 채권자이다. 받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성인인 동시에 미성숙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간다. 그 경쟁 속에서 외로워지기 쉽고 고립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외로움과 고립이 심해진다면 오늘 내 옆에 있던 누군가도 사라질지 모른다. 흔히 청춘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시기라고 말한다. 현재 수많은 청년이 안전장치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청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이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노인 인구가 많은 만큼 노인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가장 중점적인 활동은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소통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안부 인사를 전하는 등의 아주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활동이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고독사의 시발점인 고립, 고독,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다. 이외에, 미국에서는 은퇴자 중심의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을 영국은 지자체별 노인클럽 활성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4월 1일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각 지역의 복지관에서도 지역사회통합 프로그램, 1인 가구 발굴 사업 등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끼리 동아리를 만들고 복지관에서 모여서 활동하거나, 봉사자들과 복지사들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는 것이 그러한 예시이다. 종로구에서는 2021년 6월부터 이웃 찾기 체크리스트를 배포하기도 했다. 종로구 창신2동에서는 ‘이웃을 살피는 똑똑 안녕하세요! 복지통장입니다’, ‘함께하는 삶, 나누는 쌈’ 등의 안부 확인, 쌈 채소 전달과 같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상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년층과 중장년층을 대한 사업에 치중되어 있다. 청년층은 20대의 경우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고, 노동 시장에 있는 이들이 많다. 또 비교적 몸이 건강한 경우가 많아 복지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없다. 하지만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은 한둘이 아니다. 청년을 위해서는 어떤 사업이 필요할까? 서울시는 지난 4월 고립·은둔 청년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발굴부터 사회복귀까지 기존보다 촘촘한 발굴체계를 구축하고, 개인에 맞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립과 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2025년부터 지역단위 대응 진행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역별 청년 지원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각 지자체는 각 지역 상황에 맞는 안전망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자원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한다. 한정된 자원과 사각지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옆집 사는 사람은 괜찮을까? 내 친구, 동기, 가족은 혼자 있는 동안 외롭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이 고독사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는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범죄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문을 두드리지 못하겠다면 복지관이나 경찰서에 전화 한 통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방 안에서 해를 피하고 외로움에서 숨을 참고 있을지 모른다.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주 작은 오지랖으로 그들을 외로움에서 꺼내줄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오지랖이 누군가를 살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달, 이번 주, 오늘이라도 주변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 참고 문헌 ] 1. KBS시사직격 . (2021.5.7.l) . [72회full]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 | #시사직격 KBS 210507 방송[비디오]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live/rzRGLpkIjvI?feature=share 2. 이관형. (2022년 12월 14일).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최근 5년(17년~21년) 고독사 발생현황 등 최초 조사 실시-. 보건복지부. https://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CONT_SEQ=374084 3. 이익돈. (2021년 6월 9일). 종로구, 고독사 예방 캠페인 ‘함께 사는 세상’ 펼쳐. 경인매일. https://www.k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792 4. 이진아. (2013). 일본의 경험을 통해서 본 고독사 예방과 대책에 관한 탐색. 지역과 세계, 37(3), 63-86. https://www.seoul.go.kr/seoul/mediahub_view.do?articleNo=2007700
제 5 호 “종이 빨대 사용은 ESG 경영에 해당하는가?” - 기업의 ESG 경영에서 발견한 모순 -
수습기자 김나현 202210152@sangmyung.kr 경영의 새로운 걸음, ESG와 그 실체 기업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요즘의 기업들이 이윤을 추구하려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요구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사회공헌 활동, 기업 시민, 이해관계자경영, 지속가능경영 등으로 혼용 및 확장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최근 들어서는 ESG 이슈로 활발한 논의를 지속 중이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최신 경영 트렌드로 ESG 경영을 제시하고 있다. ESG란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까지 고려하여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를 뜻한다. 기업의 사회적 활동을 계량화해 지속가능투자의 관점으로 개발한 지표라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 성과지표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세계정세에 부합하는 신선한 지표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을 비롯해, 이제는 국내의 기업들도 ESG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ESG 경영은 가장 ‘HOT’ 한 트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ESG 경영은 정말 그 의미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합리적 의심을 시작으로, ESG를 구성하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 특히 사람들이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인 환경으로 한정하여 친환경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의 모순을 발견해 지적하고, 기업의 행동 방향성 변화를 촉구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기업의 ESG 경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금, 녹색경영이라는 번지르르한 말 아래 숨겨진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했다. ESG인 척하는 ‘그린워싱’, ‘그린버블’ 문제 파악을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ESG라는 새로운 경영 철학의 유행이 그 의미에 맞게 좋은 점만 야기하면 좋겠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대충 모방하여,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속이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키워드,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가리킨다. 예컨대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등 일부 과정만을 부각하여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는 사례가 이에 해당하며, 이 과정에서 기업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진다는 의미의 ‘그린버블’은 그린워싱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카페에서 종이 빨대 사용은 ESG 경영에 해당할까? – ESG 경영 모순 사례에 대하여 ESG 경영을 모방한 위장환경주의, 기업의 그린워싱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기업의 녹색 경영 모순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직접 경험해 보고 의문이 들었던 두 가지 사례의 모순을 선정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하나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이 쉽게 경험해 봤을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 사용 지침> 사례를, 다른 하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아이돌 음반 시장에서의 녹색 경영 시도> 사례를 골랐다. 생소하게 느껴질 <아이돌 음반 시장에서의 녹색 경영 시도> 사례를 골랐다. 우선<스타벅스의 종이 빨대 사용 지침>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페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량이 많아지자, 스타벅스는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전국 1,200여 개 매장에 종이 빨대 전면 도입 지침을 내렸다. 스타벅스는 플라스틱보다 분해가 쉽다는 종이 빨대의 친환경적 특징을 내세웠지만, 종이 빨대 사용에 절대적인 장점만 있진 않다. 종이 빨대는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언제나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비교했을 때 플라스틱 빨대를 만드는 것보다 종이 빨대를 만들 때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연구 결과 때문이다. <참조1> 그리고 이보다 큰 문제는, 종이 빨대 사용과 동시에 시즌별로 쏟아지는 여러 종류의 MD 판매는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의 시즌별 MD는 출시할 때마다 엄청난 관심을 끌어왔고 그 종류와 가짓수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시즌별 MD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롭고 많은 양의 쓰레기로부터 또 다른 환경 오염을 야기함을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환경을 생각한다는 기업의 녹색 경영 추구를 위해 플라스틱 빨대에서 종이 빨대로 사용 지침을 변경했지만 이와 동시에 꾸준하게 많고 다양한 MD 판매를 이어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환경적 모순, 그린워싱으로 귀결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돌 음반 시장은 어떨까? 세대를 거쳐 K-pop 역사가 녹아 있는 엔터테인먼트계의 대기업, SM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엔터 기업들 역시 ESG 녹색 경영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여러 시도 중에서도 아이돌 음반 제작 과정에 친환경적 변화를 도입하여 적은 투입 대비, 많은 사람의 이목을 빠르게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실물 앨범 소재인 PVC, 코팅 종이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문제에 대해 친환경 소재로의 앨범 제작으로 변화를 주거나, 앨범 구성품의 대부분을 미디어 콘텐츠로 제공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는 등의 녹색 경영 전략을 펼쳐오고 있다.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엔터테인먼트의 경영이 과거와 달리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린워싱에 결백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참조 2>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앨범 <참조 3> 구성품을 간소화한 플랫폼 앨범 K-pop 시장은 소위 ‘팬덤(fandom) 장사’라고 불릴 만큼 팬덤의 영향력이 강해서, 기업의 이윤 대부분이 팬덤 규모에 의해 정해진다. 기업은 소비자인 팬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사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수의 음반 판매 지수를 높이려는 경영 전략을 내세운다. 해당 전략의 주요 키워드는 ‘랜덤’이며, 앨범의 구성품이 모두 랜덤이라는 점을 극적으로 활용해 소비를 유도한다.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제작하거나, 플랫폼 앨범 발매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소비자에게 기업의 건강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불필요한 요소로 인해 결과적으로 앨범 생산량이 전보다 늘어났으며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 문제는 뒤로 숨긴다는 점에서 ESG 경영으로의 노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기사 작성에서 조금 벗어나 누군가의 팬으로서 겪은 경험을 얘기하자면, 엔터 기업과 팬덤의 관계에서 팬들은 항상 소비자인 동시에 ‘을’이 되기 때문에 기업의 과도한 소비 유도 전략에도 딱히 저항하지 못하고 구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엔터 기업의 판매 전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내 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속아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엔터 시장은 주 소비자층이 고립됐다는 면에서, 비판적인 경영 전략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당연한가 싶기도 했지만, 환경을 죽이는 동시에 환경을 살리겠다는 기업의 이면성을 마주할 때마다 더 이상의 속임수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ESG 경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업이 정말 ESG 경영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든, 단순히 건강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든, 현재 ESG 경영에 적신호가 들어왔음은 이제 확실하다. 이름만 ESG인, 위장환경주의 기업이 많아지고 있고 그 경계가 흐릿해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업의 행동 방향성 변화에 대한 촉구와 국가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제재 강화,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업의 경영 모순 사례가 생기는 이유에는 소비자의 소비 책임보다 기업이 이미지 형성 측면에서 위장환경주의를 지속하고 있다는 문제가 크게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가 기업의 경영과 모순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면 더 빨리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이 충분한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순 사례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지금까지의 소비도 한 번 되돌아본다면 좋겠다. [ 참고 문헌 ] 1. 정인희⋅반혜정(2021), 「투자자 심리에 의한 ESG가 기업위험에 미치는 영향 」, 『회계정보 연구』 39(3), 100쪽.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2.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ESG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03698&cid=40942&categoryId=31821 3. 네이버 지식백과(시사상식사전) – 그린워싱, 그린버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0884&cid=43667&categoryId=43667 4. 신승민, “종이 빨대가 친환경?”…‘플라스틱 빨대 금지’ 논란 왜?, KBS NEWS, 2022.10.1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4681 5. 유민정, [초점] "종이 빨대는 친환경이 아니다", 케미컬뉴스, 2022.05.16, http://www.chemic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87 6. 스타벅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tarbucks.co.kr/whats_new/newsView.do?cate=&seq=4930 7. 곽은영, [플라스틱 한바퀴] PVC는 왜 나쁜 플라스틱으로 불릴까, 그린포스트코리아, 2021. 8. 12,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943 8. 김지원, K팝과 환경 보호, 업계에도 변화 움직임, 스포츠 Q, 2022. 5. 26, 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537 9. SMTOWN&STORE 공식 홈페이지 https://smtownandstore.com/ 10. 메인사진_스타벅스코리아
제 4 호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202210316@sangmyung.kr 정기자 정지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우리나라는 ‘성과사회’이다. 산업혁명 이후 확연히 달라진 우리 사회는 시대가 흐를수록 ‘빨리빨리’를 외치며 남들보다 더 많은,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성과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 하고, 해내려 하고, 증명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과를 향한 부담감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과사회 속에서 때때로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우울함에 빠지곤 한다. 나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괜히 무기력함에 사로잡힌다. 무언가에 대한 목적이 있을 때는 그것을 해내야만 하는 강박감에, 그 목적을 이루었을 때는 목표가 없어졌다는 허전함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단순한 예시이지만, 마치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기만 하면 기막힌 연말을 보내고 새롭게 신년 계획을 세우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낼 것만 같았던 내가 시험 후 원인 모를 권태감을 느끼며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말이다. 앞서 말했듯 성과사회 속 개인은 그 누구에게도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과정, 그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자기 스스로 부여한다. 피로와 우울,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시대의 아주 위험한 질병이다. 이러한 성과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챙기기도 모자랄지언정,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등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를 챙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껏 내가 쓴 글만 읽어보더라도 일기를 쓰며 다짐하거나 혼자 생각에 잠길 때 마지막은 항상 ‘선한 영향력을 미쳐 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라는 번지르르한 말로 글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말들은 언뜻 보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포부와 같이 그저 보여주기식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열정을 쏟아 회사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처럼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도 우리에게 사회에 기여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그런 의무를 부여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갖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피로사회’에 따르면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개 ‘긍정성(肯定性)’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것, ‘부정성(否定性)’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나의 좌우명은 ‘긍정적으로 살자.’이며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믿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긍정성이 우울증과 연결이 되니 혼란스러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그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이 오히려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소망과 바람을 성과사회 속 무한한 긍정으로 바라본다면 이는 금방 지쳐버리게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자신에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하는 것일까. 대체 누가 우리에게 슈퍼맨도 해내기 벅찰 것이 분명한 이런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것일까. 무언가 글을 쓰거나 발표하는 상황이 있을 때마다 이런 포부를 밝히는 나의 생활을 돌아봤다. 그저 나를 꾸미고 보여주기 위한 말인지, 선한 영향만을 미치고 싶은 사회에 대한 애정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후자였다. 그렇다고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 대한 애정은 아니다. 그저 나의 작은 힘으로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행복할 듯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더 괜찮은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변화된 사회를 향한 기대감의 애정을 가지고 그런 말들이 쉽게 나왔던 것으로 생각한다.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으로 자신 있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가 실패하여 나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들게 될 수도 있다. 이론과 실재가 늘 같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먼 훗날 자신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당장은 알 수 없더라도 그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는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하게 만든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희망 또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주인공 바틀비는 직장에서 일 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날, “I would prefer not to.”라며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말을 거절한다. 심지어 자신의 주 업무인 필사 일까지 거부하고 결국 해고된다. 바틀비의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바틀비의 대사 “I would prefer not to.”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등으로 번역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문장임에도 어떤 문장은 바틀비의 ‘선택’ 자체에 집중하고, 어떤 문장은 ‘Want’에 집중한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직원들이 바틀비의 말투를 따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처음에는 바틀비를 어딘가 낯설게 보았지만 점점 그에게 빠져든 것이다. 그들은 잠시 치열한 성과사회 속에서 개인 스스로 자신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바틀비가 되어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자 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한 사람의 행동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바틀비는 모두가 맞는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사회에 전파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어려워하는 사회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용기 있어 보인다. 만약 정말 ‘피로사회’의 정의대로 긍정적 힘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부정적 힘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면 때로는 바틀비와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거절하는 것을 못 한다. 사실 나에게는 어떤 것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바틀비처럼 명확하게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제안하기까지의 용기가 혹시나 내가 거절 함으로써 상처가 되거나 무안한 감정을 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일까. 그래서인지 이런 성격 탓에 인간관계에 있어 이유 모를 오해들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바틀비가 더 대단해 보였고 많이 배웠다. 성과사회 속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품고 있다. 작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큰 목소리가 되고 이는 더 나아가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바틀비가 되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문제가 있다면 감추지 말고 꺼내어 보자.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리고, 그저 하고 싶은 게 많은 초등학생이 되어 무작정 내뱉어 보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그 무엇이든 전하고자 하는 바가 진심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꾸준히 내뱉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와 책임감이 생겨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바틀비처럼 용기를 가지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싶은 목적과 마음만 있다면 그 마음들이 모여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잉 긍정은 스스로를 착취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80673.html> 메인사진 _ "I would prefer not to." https://readingjournal4hurst.blogspot.com/2015/01/herman-melvilles-bartleby-scrivener.html
제 4 호 자그마난 볼펜 모나미 153
자그마난 볼펜 모나미 153 정기자 201710846@sangmyung.kr임 지 혁 오늘도 어딘가의 책상에서 굴러다닐 흰 색에 검정색, 어쩌면 육각 연필과도 비슷하게 생긴 볼펜 한 자루, 모나미 153을 집어 들고서는 주머니에 넣었다. 필자는 그 후에야 문을 열고 나서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는 한다. 문구점에서 300원 정도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면서 요즘은 더러 특이한 외관을 가진 특별판들도 눈에 들어온다. 153은 우리들의 일상 다반사의 잡담에도 종종 등장한다.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력고사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모나미 153 한 자루를 다 썼다고 이야기하시고, 어떤 기자는 휴대하면서 잉크가 새지 않아서 모나미 153을 애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에는 유니의 제트스트림이나 파이롯트의 프릭션 등 수입산 볼펜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 모두 모나미 153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모나미 153은 단순히 저렴하고 자그마한 볼펜 한 자루를 넘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1 : 지상자에 담긴 모나미 153 볼펜들. 2004년 경] 취향에 따라서 주머니 속, 혹은 필통 속에서 꺼내어 한 손으로 노크하고, 그렇게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다 썼다면 단순히 튀어나온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부품을 눌러주어서 심을 다시 몸체 속으로 넣으면 된다. 글을 쓰면서는 흔히 말하는 ‘볼펜 똥’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것들은 많이 좋아져서 글을 쓰는 데 불편하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 과정, 오늘은 그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볼을 굴려 가며 잉크를 묻히는 필기구인 볼펜의 특허는 1888년에 처음 등록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때의 것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 반 세기가 지나서 1938년에 이르면 더 실용적인 볼펜의 특허가 등록되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는 마침내 미국 맨허튼의 어느 백화점에서 볼펜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4년 뒤인 1949년에 이르면 일본에서도 볼펜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후로 일본의 수많은 문구 업체들이 볼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회사들 가운데 AUTO(현 OHTO, 이하 오토)는 1962년 326이라는 볼펜을 개발한다. 당시의 저렴한 볼펜들은 요즘의 네임펜처럼 뚜껑이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326은 뚜껑을 열어야 할 필요 없이, 단순히 끝을 눌러주는(노크) 것으로도 글을 적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노크식 볼펜은 있었지만 오토는 경제적이면서도 간결한 구조로 구현하였고, 이를 통하여 일본에 노크식 볼펜을 보급하게 된다. 요즘에도 많은 일본의 볼펜들이 노크식 구조를 가진다. 모나미 153은 지금도 한국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온전히 한국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토 326이 나오는 그 즈음에 작년 초에 타계하신 모나미의 설립자, 고 송삼석 모나미 전 회장이 일본의 오토 사와 접촉한다. 당시 광신화학공업사라는 이름이던 모나미, 그리고 일본의 문구 기업 오토의 만남은 유별나게도 5.16 쿠데타에서 시작한다. 1962년 군부는 반란 1주년을 자축하며 국제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여기서 송삼석 전 회장과 일본 우치다 양행이 함께 참석했다. 이 때 송 전 회장은 우치다의 소키쿠 과장이 사용하던 볼펜을 목격하고서는 한국에 출장 온 소키쿠 과장을 극진히 대접한다. 결국 1962년 7월에는 우치다에 볼펜을 납품하던 오토볼펜주식회사를 소개받으며 모나미는 볼펜 제조의 첫 발을 떼었다. 송 전 회장은 오토로부터 볼펜 볼 등을 수입하는 대신 볼펜 잉크 제조 기술 등을 도입하며 귀국하였고, 연구와 개발 끝에 모나미 153이라는 이름의 볼펜을 출시한다. 이름이 왜 모나미 153이었을까? 당시에는 교육 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사내에 한불사전을 끼고 사는 불어를 좋아하는 직원이 있었다고도 한다. 때문에 불어의 기본적인 문장이었던 Mon Ami(나의 친구)라는 단어가 사내 이름 공모전에 제출되었을 때 이에 호응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153이라는 숫자에는 요한복음의 “그물에 가득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153) 마리라.”라는 구절에서 빌려왔다고도 하고, 1963년 5월 1일에 볼펜 잉크 개발이 완료되어 그런 이름이라는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3번째로 만든 15원짜리 볼펜이라는 의미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 모나미의 송하경 회장이 153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잉크 노하우보다도 비밀’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세 가지 이상의 이유가 붙을 정도이니 오히려 이 볼펜에 153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과정들을 거치어서 마침내 MonAmi 153이라는 이름을 가진 볼펜이 탄생한다. 이는 오토 326과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볼펜이었다. [그림 2 : 모나미 153 볼펜들의 모습] 한국과 일본의 우연한 만남, 그 결과 오토 326과 모나미 153이라는 쌍둥이 볼펜이 세상에 출시되었지만 그 말로는 사뭇 달랐다. 오토 326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혔고, 반면 모나미 153은 올해면 벌써 60년 동안 한국 사람들의 곁에 함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세대 정도만이 그것도 아주 간혹 오토 326이라는 볼펜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왜 이런 차이점이 생겼을 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잠시 연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은 어쩌면 일본보다도 연필에 친숙한 나라다. 요즘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1960년 경까지도 연필은 한국인에게 굉장히 귀중한 서구 필기구였다. 당시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필기구라고는 만년필, 볼펜, 샤프펜슬 등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미국이나 일본산의 고가 수입품이기 때문에 함부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반면 연필은 국내에서 그 원료를 구할 수 있고, 때마침 국내에 제조 시설도 존재하였다. 연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서양식 휴대용 필기구였던 것이다. 모나미가 세상에 나오던 즈음, 그런 옛날의 한국 시장에서는 연필 모양의 디자인이 더더욱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육각형 몸체에 검정색 끝 단을 가지는 연필과 비슷한 볼펜, 오토 326은 머지않아 일본에서 단종되지만 한국에서는 그 외형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음은 이렇듯 그 디자인이 한국에 더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나미 153의 디자인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꼭 들었고, 그래서 국내의 다양한 업체들이 비슷한 모습을 가진 다양한 볼펜들을 출시했다. 오늘날에도 문구점에서 153과 유사한 모습을 가진 다양한 볼펜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약 이렇게 비슷한 모습의 볼펜들이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나왔다면 153은 그 매혹적인 외관만으로 시장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모나미 153은 그 전통적인 외관의 모습을 유지하는 대신 그 내부는 끝없이 변화했고, 그렇게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모나미는 우치다 양행은 물론, 세일러만년필이나 주우화학 등 일본의 문구 회사들과 끊임없이 접촉하였으며 나중에는 유럽의 문구 회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전 세계의 기술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153은 유연하게도 사람들이 더 쓰기 편하도록 바뀌었고, 더 내구가 높아지도록 바뀌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 3 : 2004년의 모나미 153과 2018년의 모나미 153의 비교. 위가 2004년, 아래가 2018년이다.] 만약 새로 볼펜을 사려고 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모나미 153을 선택하겠지만 우선 그것은 제외하기로 하자. 한편 요즘 문구점에는 우리들의 눈길을 끄는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다색 볼펜들이 많지만 일단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검정, 파랑, 빨간색 볼펜만 생각하기로 하자. 이 두 가지 조건 속에서 볼펜을 고르면 많은 사람들이 매끄럽게 글이 적히는 볼펜을 선호한다. 조금 뻑뻑하면서도 탄탄히 적히는 것보다는 부드러우면서 걸림이 없고, 그러면서도 진하게 적히는 볼펜이 인기가 많다. 이런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유명한 볼펜이 바로 지난 2006년 일본의 문구 기업 유니가 선보인 제트스트림(Jetstream)이다. 제트스트림은 점도가 낮은 잉크를 기반으로 매우 매끄러우면서 부드러운 필기감을 구현한 볼펜이다. 컴퓨터처럼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필기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제트스트림에 열광했으며 어느새 ‘저점도 잉크’는 볼펜 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그렇다면 153은 어떨까? 문구점에 새롭게 입고된 모나미 153의 포장을 풀고, 다시 종이에 적어본다면 제트스트림과 비슷하게 매우 묽고, 부드럽게 글이 적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제트스트림을 애용하는 독자라면 요즘의 모나미 153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나미 153이 처음부터 이런 잉크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새 상태의 1994년산 모나미 볼펜을 사용해보면 그 시기의 다른 볼펜들과 비슷하게 다소 뻑뻑하면서 탄탄하게 글이 적힌다. 글씨를 적는 데 힘은 다소 들지만 조금 더 꼼꼼하면서도 정갈하게 적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그것보다도 이전의 것은 어땠을까? 필자는 아직 정상적으로 잉크가 나오는 먼 옛날의 153을 찾지 못했으나 옛날에 그것을 사용했던 분들께 여쭈니 또 다른 필기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연필과 비슷한 외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그 속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게 바뀌었다. 여기에 2007년경에 볼펜의 구조가 다소 바뀌는 등, 그 내구 또한 개선되면서 지금의 모나미 153은 변하지 않는 외관,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유연한 내부까지 겸비하면서 완벽한 볼펜에 이르렀다. 일본의 어느 볼펜에서 얻은 모티브는 그렇게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마음에 들면서도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보기에도 쓰기에도 좋도록 발전시켰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3년 모나미 153의 출시 50주년을 기념하여서 만든 한정판 제품은 모나미가 맺은 하나의 과실일 것이다. 이 볼펜은 2만 원의 가격을 가지고선 1만 자루를 한정으로 생산했는데 출시되던 때에 웹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빠르게 완판했다. 그렇게 모나미 153은 단순히 자그마한 싸구려 볼펜이 아닌, 그 이름처럼 ‘나의 친구’이자 일종의 문화적 상징임을 증명했다. [사진 4 : 2021년에 모나미 153의 고급형으로 선보인 독도 특별판] 모나미 153이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아마도 이를 기념하는 새로운 볼펜이 나올 것이다. 우리들의 친구, 어느 조그마한 볼펜의 환갑 잔치, 그것은 우리들의 미래에 어떤 형태로서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줄까.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파란색 153 볼펜을 바라보며 잠시 상상에 잠겨본다. 마침 사용하던 153 한 자루의 잉크가 얼마 남지 않은 참이다. [참고자료] 송삼석. (2003). “내가 걸어온 외길 50년”. 한국일보사. 메인사진 _ 모나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pUcAe3PUJG/
제 4 호 예비입대자가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예비입대자가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202110483@sangmyung.kr 정기자 양현준 20살, 누구에게나 20살은 설렘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저 쓸 곳 없는 플라스틱 카드였던 주민등록증에 의미가 생기고, 이제는 각자 꿈꿔온 목표를 향하여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성인이 된 우리는 자유와 희망을 얻음과 동시에 의무와 책임 역시 떠안게 된다. 20살이 되자마자 체감할 수 있는 의무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국방의 의무’이다. 이때부터 병역판정검사를 시작으로 병무청(징집·소집 그 밖에 병무 행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다. 누구나 그랬듯 한 번쯤은 막연하게 ‘내가 군대에 갈 시기면 통일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어쩌면 정해진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 투영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군입대 시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다가도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왜 군대에 가야...아니 왜 끌려가야 되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왜 군대에 가야 할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 우리나라는 징병제로 군대를 운영하고 있어서이다. 여기서 징병제란 일정 나이에 도달한 국민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의무적으로 병역에 종사해야 하는 의무병제에 속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즉,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유사한 완전 징병제인 국가는 이스라엘과 스위스, 콜롬비아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직업 군인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인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시 다른 국가처럼 모병제로 전환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정치적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는 아직 휴전상태이다. 잠시 전쟁을 쉬어가고 있는 것이기에 북한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고 긴장해야 한다. 국방 기술 진흥연구소가 2022년 12월 9일 발간한 ‘2022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보면, 우리나라의 2021년 국방비 지출은 500억 달러로 전년도에 이어 세계 국방비 지출 10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를 통해,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국방비로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국방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병력을 줄이는 선택을 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과거와 달리 첨단과학 기술이 군에 도입되고 있기에 적정한 병역자원이 확보될 수 있다면, 병력을 줄이고 모병제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징병제임에도 병력확보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 600명으로 1년 전보다 4.3%, 1만 명 넘게 줄었다. 이는 역대 최저치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전년 대비 0.03명, 즉 –3.4% 감소했다. 이 역시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치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에 못 미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다. 한국보다 인구 규모, 군사적 위협, 군 복무 환경, 군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 등 여러 면에서 모병 여건이 좋은 나라에서도 모병은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1963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모병제를 도입한 영국은 2019년부터 외국인에게까지 지원 대상을 넓히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통일 이후 20년이 지난 2011년에야 모병제를 시행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병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현재 징병제로의 환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상황을 미루어봤을 때, 군입대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남성 모두가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다.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4급 이내로 판정받아야만 복무대상자로 선정되어 군복무를 하게 된다. 그러나 통계청을 통한 한국의 병역판정검사 현황을 살펴보면, 2021년 복무대상자로 판정된 사람들은 85%에 이른다. 사실상 모두는 아니지만, 높은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의 85%나 되는 사람들 모두가 현역, 즉 군대에 직접적으로 입대하는 것은 아니다. 4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보충역인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사회복무요원이란 병역법 제26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에 따라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 및 사회복지시설에서 복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사회복지시설에서 노인·장애인 신체활동 지원, 유치원·초·중·고 학교 또는 교육청에 소속된 장애 학생 활동 지원, 생활안전 및 교통업무 지원, 사회서비스업무 및 행정기관 경비지원 분야 외의 복무 분야에서 사무보조ㆍ민원 안내ㆍ상담 등의 업무가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보통 평일 09시~18시까지 근무하며,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구조이다. 여기서 누구나 의구심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사회복무요원이 하는 일이 ‘병역’, 군복무라고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나열된 업무들은 군사적 성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무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의 월급은 60만~80만 원대로 군 사병보다 10만 원 이상 많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모두 제공되는 군인들과 달리 사회복무요원은 집과 일터를 오가며 주거비, 생활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최저생계비의 기준이 되는 1인 가구의 중위소득 60%가 116만 6,887원이다. 2인 가구와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각각 195만 6,051원, 251만 6,821원이다. 누가 보아도 사회복무요원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서울과 같이 대도시에서 산다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진다. 지난달 서울시에서 계약된 연립다세대·단독다가구(전용면적 60㎡ 이하)의 평균 월세는 44만 5,000원(보증금 4003만 원)이다. 자취하는 사회복무요원이라면, 월급의 절반 정도를 집세로 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중식비로 지급되는 7,000원도 현재 물가를 고려하면, 합당한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사회복무요원 관리 규정에 따르면, 겸직을 허가할 수 있는 사유는 본인 또는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나 수급권자·차상위계층·한부모가족지원법 지원 대상자이거나 그 밖에 복무기관장이 부득이하게 인정하는 경우 등으로 제한되어있기에 겸직을 통해 금전적인 여유를 추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누가 보더라도 군사적 성격이 전혀 없는 일들을 징병제라는 틀 안에서 그저 최저임금보다 턱없이 모자란 값싼 임금으로 노동력을 충원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상은 그럴싸한 제도 속에서 자신의 재산 또는 부모님, 배우자의 재산을 갉아먹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는 과연 누굴 위한 제도일까. 병역판정검사 4급이 의미하는 바는 현역으로 군대에 입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굳이 ‘병역의 의무’를 다른 형태로 수행하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무작정 개인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비상식적인 행위가 아닐까? 연기자 A(현역 복무자) : “야, 지금 다 물어봐. 형님이 싹 다 알려줄게. 사실 너희도 알겠지만, 나 몸무게 때문에 4급 받았었잖아. 현역으로 갔다 와야 내 성격이 허락할 거 같아서 슈퍼힘찬이 제도를 신청했거든, 그래서 살 빼고 현역으로 입대한 거 아니겠냐.” 연기자 B(친구) : “네 성격 같으면,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지.” 연기자 A(현역 복무자) : “어차피 우리 다 군대 가야 하잖아. 그런 거라면 제대로 가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인 거지.” 병무청이 2021년 11월경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렸던 ‘친구에게 듣는 군 생활 이야기’라는 제목의 5분짜리 영상 중 일부 대사를 옮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슈퍼힘찬이’ 제도는 시력·체력에서 4·5급 판정을 받았지만, 현역 입대를 희망하는 경우, 병원이나 피트니스 클럽, 보건소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문제는 다음 대화에서 발생한다. “네 성격 같으면,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지.”라는 부분이 많은 사람에게 뭇매를 맞았다. 일주일 사이 해당 영상에는 5천8백여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논란이 일컫고, 병무청은 “본래 취지와 달리 논란이 된 것에 유감이다.”라며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였다. 군인들의 마음과 입장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대변해주어야 할 병무청이 사회복무요원과 현역 입대자를 평등한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현역 입대자가 아닌 사회복무요원은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할 수 없고, 군부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제대로 병역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병무청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사회복무요원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그럴싸하게 말로만 포장했을 뿐이지 실상은 모순만 가득한 제도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BTS, 아시아 최초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영화 ‘기생충’을 통해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알린 봉준호 등 분야별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흔히 애국심을 느끼곤 한다. 20대, 갓 성인이 되어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시기에 남자들은 18개월 혹은 21개월가량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된다. 대부분이 나의 조국, 나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과 애국심이 아닌 군대에 억지로 끌려간다는 억울함과 불만을 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필자는 군대라는 곳이 애국심을 심어주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애국심마저 군대라는 제도에 대한 의구심으로 변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군대를 다녀오면, 있던 애국심마저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2014년 선임병들의 구타ㆍ가혹 행위 때문에 사망한 윤 일병 사건, 2023년 강원도 태백의 육군 부대에서 혹한기 훈련 중에 사망한 병사 사건, 군대 부실 급식 사건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여럿 발생하였다. “군대는 작은 일도 크게, 큰일도 작게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존재하듯, 가장 폐쇄적인 집단인 군대에서의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헌법 제39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인 군 가산점이나 돈을 의미할까? 물론 직접적인 보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보상과는 별개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병역의무 이행을 더 존중하고 배려하는 군 내부와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군대 내 간부들은 국군장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만약 사건이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면, 발생 원인부터 과정, 결과까지 투명하게 조사하여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또한, 개개인의 사회복무요원이 처한 환경을 고려하고, 현역 입대자들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우해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예비 입대자인 필자가 예비 입대자들에게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참고문헌> 김지헌(2022), 작년 국방비 지출 미국·중국·인도 순…한국은 10위 유지, 연합뉴스, 2022. 12. 09., https://www.yna.co.kr/view/AKR20221209048800504 고은상(2022), 지난해 합계출산율 0.81명 또 '역대 최저'‥OECD 꼴찌, MBC뉴스, 2022. 08. 24., https://imnews.imbc.com/news/2022/econo/article/6401211_35687.html 송상현(2022), "월세 내면 절반 날아가"…사회복무요원 월급 최저생계비도 못 미쳐, news1, 2022. 08. 21., https://www.news1.kr/articles/?4776622 최병욱(2022), 대한민국 징병제의 딜레마, 미래한국, 2022. 07. 22.,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588 MBCNEWS, "군대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 논란된 병무청 영상 (2021.11.13./뉴스데스크/MBC), 2021. 11. 15. https://www.youtube.com/watch?v=Dqa808c6Pzs 메인사진 _ https://www.pinterest.co.kr/search/pins/?q=군인%20일러스트&rs=srs&b_id=BBONspI5RIrtAAAAAAAAAADfiP5fz6i5VAXKW0AFst2vW6oUUHp6WSNL7xo9TRmxPct969O_MpENsBwlCN2P_YC3gB6xs71v5EXohjD8Y9sW&source_id=rlp_kwJ3W619
제 4 호 시를 읽지 않는 요즘 학생들을 위하여
시를 읽지 않는 요즘 학생들을 위하여 202110353@sangmyung.kr 정기자 송지민 간혹가다 요즘 학생들은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요즘 학생들이 문학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하며, 학생들의 입장에 공감한다. 학창 시절, 우리는 문학 작품을 분석해야만 했다. 작가의 출생 연도부터 작가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공부한 뒤, 그제야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작품을 읽을 때는, 분석하기 바빴다.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이 시에서 사용된 표현법엔 어떤 것이 있을까? 시에서 화자의 성별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작가에게 빙의라도 한 듯, 그 문학 작품을 작가의 위치에서만 바라보며 해석하려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기에 완전한 공감을 하기란 불가능했고, 그러한 이유로 문학을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처럼 시를 단지 지루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과연 우리만의 잘못이었을까? 작년 이맘쯤, 시를 읽은 건 수능 이후로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시를 보고, 주제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가 ‘시를 읽었다.’라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해 시를 적어보고 가려 한다. 도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 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손톱에 칠한 색을, 너의 몸속에서 찾아보려 한들 헛일이겠지.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다. 네가 가여워하는 너 자신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한, 너는 분명 세상을 싫어해도 좋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이 행성에, 연애 따위는 없다. 사이하테 타히, 블루의 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그리고 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읽었지만, 그냥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아직도 시의 내용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은 여전히 느낀다. 나는 나의 이 울렁거리는 마음의 느낌을 학생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어떻게 같은 시를 보고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겠는가.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으며, 똑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보고도 누구는 씁쓸할지라도 누군가에겐 그저 담담한 시일 수 있기에, 학생들이 각각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마주한 시 하나에 문학의 매력에 빠질 수 있도록 말이다. 몇 년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시인 한 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재치 있는 시로 유명하신 시인이다. 혹시라도 하상욱 시인을 모를 수 있기에, 그분의 시를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돼 - 하상욱 단편 시집 ‘애니팡’ 中에서 이처럼 하상욱 시인은, 시의 진지한 내용 뒤에 제목으로 반전을 주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하상욱 시인의 시가 한창 떠오를 때, ‘저게 문학 작품이 맞냐?’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문학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일 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들에 하상욱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학은 즐기는 것이며, 수용자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문학을 어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시를 즐길 수 있을지를 말이다. 먼저, 학생들에게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활동을 마친 뒤, 마지막에 설명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시에 흥미를 느끼기 전부터 배워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면, 학생들은 시를 공부해서 정복할 대상으로 느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학생들이 시에 부딪혀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위에 설명한 하상욱 시인의 재치 있는 시부터 소크라테스의 시까지 다양한 분야의 짧은 시를 카드로 만들어, 학생들이 모두 읽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미디어의 발달로 종이로 된 책조차 읽으려 하지 않으며, 빠른 정보 전달을 원한다. 또, 교과서에는 고작 몇 편의 시만 나와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더욱 많은 시를 간결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자신의 문학 감성에 맞는 시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러면 누군가는 유머러스한 시를, 다른 누군가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또 누군가는 자연에 동화되는 시를 고르며 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었다면, 사실 시가 우리 삶 속에도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래는, 시에 멜로디를 입혀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에 이러한 점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며,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종이에 써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평소엔 그저 멜로디와 함께 듣던 노래 가사를 종이에 시처럼 적어봄으로써,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다시금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 안에서 시의 표현법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평소에 학생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시 속에서 표현법들을 꾸역꾸역 찾아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표현법을 찾는 활동에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요소가 끼워져 있다면, 그 과정은 다를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거치고 나면, 학생들이 시가 분석하여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후에 어떤 학술적인 활동을 하든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때는 시를 심도 있게 바라보는 법이나 간단한 문제 풀이 등의 수업을 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시와 학생들의 거리는 이미 많이 좁혀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학습 뒤에는 창작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이 자신의 시를 써보는 것이다. 어렵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모방해도 좋다.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하기에, 어느 것이 되었든 직접 자신의 시를 써보는 것은 학생들이 자기의 생각과 신념을 확립하고 감성을 그려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시를 어려워하여 읽지 않는 요즘 학생들을 위해 어떠한 교육을 하면 좋을지 글을 써보았다. 아마 이 글이 나의 올해 2022년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글을 사랑하고 교육에 뜻이 있는 나이지만, 정작 문학 교육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단지 페이지를 채우기만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직은 어리숙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비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한 진정한 문학 교육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비록 다른 글보다 생각하고 쓰는 기간이 비교적 짧았기에 이번 글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만, 방학 동안 위 주제에 대해 더 생각해보려 한다. 좋은 글을 써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메인사진_하상욱 시인 인스타그램 _ https://www.instagram.com/type4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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